김정희는 우람한 영지와 날렵한 난초꽃을 짙고 옅은 먹으로 그리고 "지초와 난초가 향기를 함께 하다"는 지란병분(芝蘭竝芬)으로 화제를 썼다. 그림과 화제의 주제는 모두 우정이다. 왼쪽에 공간을 남겨 둔 것은 처음부터 친구 권돈인과 함께 이 부채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권돈인 또한 인생이 비록 백 년이라도 우정은 끊어질 수 없고, 지란이 시들어 없어지더라도 그 향기는 잊을 수 없다고 화답했다. 그들의 우정은 이 작품으로도 남았다. 권돈인이 3살 많았다. 김정희와 권돈인이 모두 작고한 후 이 부채를 본 이하응, 홍우길이 이들의 우정에 공감하는 글을 써 넣었다. 이하응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고, 홍우길은 벽초 홍명희의 증조부이다. 4명이 이 부채를 함께 완성한 것이다.
그림부채인지, 글씨부채인지 애매해 보이는 이 작품은 문인(文人) 예술의 한 전형이다. 문인은 '문(文)'을 하는 또는 문이 있는 사람인데, 문은 문자, 문장, 문학, 학문 등 어떤 한 단어로 대응해 번역하기 좀 어렵다. 한문 고전을 익힌 학식을 바탕으로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썼던 지식인을 문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은 정치가이자 관료로서 또는 그 예비자이거나 은퇴자로서 지도자를 돕고 국민을 이롭게 하는 치군택민(致君澤民)을 목표로 하는 엘리트였다.
문인들에게 시서화는 수양의 지표이자, 자아 표현의 수단이었고, 소통하고 교류하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마음을 담아 선물하며 주고받기도 하고, 감상을 써 넣고 인장을 찍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념물로 남기며 동류의식을 나타냈다.
그래서 문인의 그림인 '문인화'는 화제와 글씨가 그림만큼 비중이 크고, 마음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작품만큼 중요하다. 평소 공부하며 늘 짓고 썼던 글과 글씨가 그림보다 익숙했기 때문이고, 주문을 받아 그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흥에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처럼 때로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사실은 그렇게 될 때 문인화는 더 의미가 깊어지고, 가치가 높아진다. '세한도'도 그렇고, '불이선란'도 그렇다.
문인화는 친구 사이이건, 사제 사이이건 우정이라는 그들의 스토리가 글과 글씨와 그림으로 융합된 종합물이다. 사람과 사람살이와 예술이 일치된 인문 예술인 것이다. '세한도'에서 오경석을, '불이선란'에서 달준과 오규일을, '지란병분'에서 권돈인과의 우정을 배제한다면 그 의미와 가치가 반감될 것이다. 문인화는 함께 향기로움으로 향하는 그림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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