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엔 언제나 학교 옥상에서 그림을 그렸다. 학교 뒤편 화조동(선산군 선산면)의 기와를 그리고, 기와에 드리운 감나무를 그리고, 그 뒤로 봄가을 달라지는 비봉산의 색을 그렸다.
일요일 아침이면 그곳에 올라 매일 똑같은 산, 똑같은 지붕을 그렸다. 겨우 달라지는 게 있다면 산빛이거나 하늘빛이거나, 감꽃이 피거나 지는 모습이 다였는데도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선생님은 매일 아침저녁 우리를 그곳으로 불렀다.
계절이 바뀌면 버스를 타고 대회에 가고, 수선스레 분주한 도시의 선생님들 속에서 여전히 아무 말 없으신 선생님이 주신 카스텔라를 먹고, 다음 날이면 또 운동장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 텅 빈 운동장에서, 그 삼 년 동안 나는 천 번이 넘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의 끝에는 언제나 노랗게 물든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자라 어른이 된 후에도 선생님이 그때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 알지 못했다.
훈련을 통하지 않고도 이미 영적인 존재들, 아이들의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그들의 언어가 어느 먼 아름다운 세계에서 오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미 창조를 그친 우리가 이토록 창조적인 그들에게 어떻게 별과 밤의 속삭임을, 그 아래 피어나는 백합의 지혜를, 바람이 나무에 들려주는 비밀의 말을, 서로 얼싸안고 공존하는 치열한 포옹을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말들과 도저히 떠올릴 수 없게 된 떠나온 세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온종일 창조를 학습하느라 진정 창조할 여력이 없는 아이들이 창조하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창조를 배우러 와서 묻는다.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건가요?"
그럴 때면 나는 내 기억 속 마을을 떠올린다. 숲이 있고 냇물이 흐르고 멀리 강이 보이는 곳. 나무가 잎을 털기 전 무어라 속삭이는지, 텅 빈 운동장에 날리는 태극기가 어떻게 음악이 되고, 그날의 회화가 어떻게 먼 시간을 돌아 마음 깊은 곳에 힘으로 자리하는지 가르쳐 준 내 선생님의 천 번의 노을을 생각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사철을 머물며 숲이 우수수 잎을 터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놀다가 놀다가, 매일매일 놀다가 지겨워 잠이 들것이다. 그리고 흰 눈 쌓인 어느 아침, 아이들은 헛간을 뒤져서 찾은 연장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철사를 구부리는 광경을 나는 멀리서 지켜볼 것이다. 비로소 미술과 과학이 창조되는 모습을, 토론과 배려와 협력이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해거름 내리는 저녁, 우리의 썰매는 드디어 완성될 것이다.
그 저녁, 겨울 강가에서 흠뻑 젖은 시린 무릎을 안고 돌아오는 길, 노을 가득 까마귀가 울고, 문득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볼 때, 우리는 쌓인 흰 눈 속에 먹이를 찾아 내려온 고라니의 선연한 눈망울과 마주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이끌고 이끌 거룩한 비밀의 순간,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동화는 그렇게 탄생할 것이다.
그곳에서라면 우리는 따로 미학을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덕을, 사랑을, 경건한 예배를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삶을 거쳐 가끔은 외롭고 헐벗은 모습으로 헤매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을 다시 아름다움 속에 세워 놓을 수 있도록, 그날의 빛은 가슴 속에 고요히 뿌리내려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김계희-그림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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