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화 속 숨은 이야기] ⑮영원불멸설의 구현

투트모시스 작,
투트모시스 작, '네페르티티의 흉상'

투트모시스, 네페르티티의 흉상, 부분적으로 채색한 석회암, 50cm, 기원전 1345년경, 베를린 노이에스박술관

2007년,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보수공사 이후 재개관하여 더 유명해진 베를린의 '노이에스(新)박물관'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특별한 조각상 하나가 있다. 미술관의 다른 모든 작품은 촬영할 수 있지만, 촬영이 금지된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된 독립된 방 정중앙에 숭배의 대상처럼 모셔져 있다.

네페르티티(BC 1370~1334)는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후반기의 파라오 아케나톤의 왕비였다. 전설적인 그녀의 미모는 이집트인이 생각했던 인체의 비례와 조화를 대표한다.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룬 얼굴을 그리는 뚜렷한 윤곽선과 날렵한 콧날, 장밋빛 입술에서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범접하기 어려운 왕비의 고귀한 자태를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길게 늘인 유려한 목에는 보석 펜던트가, 머리에는 순금 코브라 모양의 표장(uræus)이 달린 높은 왕관이 씌워 있다.

파라오 아케나톤은 거의 3000년간 하나의 통일된 양식으로 계승되어온 이집트 미술에 혁신을 가져왔다. 인물상에는 종교・장례 의식에 맞춘 초월적인 신의 모습이 사라지고 살아있는 사람의 부드러운 미소가 나타난다.

경직되고 엄숙한 대신 유기적으로 흐르는 선으로 표현된 인체는 생동감이 넘친다. 아케나톤의 수많은 조각상에서는 특히 신비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육감적인 입술이 인상적이다. 아케나톤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일 신앙 체계를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신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태양광선의 신인 '아톤'(Aton 혹은 Aten)만을 숭배하면서 원래 이름인 아멘호피스 또는 아멘호테프 4세를 '아톤의 찬란한 영혼'이라는 의미의 아케나톤(Akhenaton)으로 바꾸었다.

네페르티티라는 이름은 '미인이 왔다'라는 뜻으로 그녀가 이방인임을 암시한다. 묘비에 미완성 상태로 새겨진 명문에서 그녀가 이집트 왕가의 전통적인 혈족이 아니라 고위층의 딸로서 왕비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점점 광신도가 된 아케나톤은 아르마나 지역으로 옮긴 새 수도에 궁정과 신전을 신축하느라 국고를 탕진해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아케나톤이 전통신앙을 되찾으려는 신관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었는지 또는 암살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가 사라진 후 정치력이 뛰어난 네페르티티가 실권자가 되었다는 학설은 유력하다. 아케나톤의 인물상보다 네페르티티를 표현한 작품 숫자가 더 많은 점이 이를 방증한다.

딸 여섯만 둔 네페르티티는 후궁 소생인 10대 소년을 왕으로 삼았는데, 바로 도굴된 흔적 없이 발굴된 무덤에서 나온 황금마스크의 주인인 투탄카몬(Toutankhamon)이다. 그의 이름에서부터 과거의 수도 테베 지역에서 널리 퍼졌던 아몬(Amon 혹은 Amen)신 숭배로 복귀했음을 알 수 있다.

겨우 몇 년간 왕위에 있다가 요절한 이 소년 왕은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의 무덤 발굴에 얽힌 저주로 유명하다. 아가서 크리스티를 비롯해 여러 작가, 감독이 추리소설이나 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히 흥미진진한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1912년 12월 6일, 루드빅 보르차르트가 인솔한 독일 고고학 탐사팀이 발굴했다. 조각가 투트모시스의 작업실에서 미완성 상태인 네페르티티의 여러 석조와 함께 발굴된 이 작품은 왕비의 조각상 제작을 위한 표본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대리석이나 화강암 대신 깨지기 쉬운 석회암으로 만든 조각상의 예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네페르티티에 관한 기록을 연구한 이집트학 전문가들의 해석만큼이나 이 조각상 발굴에 얽힌 스토리도 분분하다. 스위스 미술사학자 앙리 스티르렝은 이 작품이 보르차르트에 의해 조작된 가짜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러나 2006년에 이 조각상을 5mm 단위로 스캐너 단층촬영한 결과, 제18왕조 시기의 진품임이 밝혀졌다. 석영을 박고 검게 칠한 왼쪽 눈동자가 사라져버린 이유에 대해서도 다양한 추측이 있다.

히틀러는 투탄카몬을 발굴한 영국 고고학팀에 비교하는 의미로 이 작품을 '독일인의 영광'으로 불렀다. 이 작품의 소유권을 놓고 지금까지도 독일과 이집트 정부는 날을 세우고 있지만, 국빈방문 중 노이에스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본 무바락 대통령은 이집트를 알리는 '위대한 외교관'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수많은 연구자와 관람자의 열렬한 관심의 대상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그토록 집착했던 영원불멸이 여기서 구현되고 있지 않은가?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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