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진짜 강군(强軍)인지 무늬만 그런지는 평소에는 알기 힘들다. 전투 그것도 강적(强敵)과 조우(遭遇)했을 때에야 비로소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만주국과 소련, 외몽골 접경지역에서 일본 관동군과 소련군이 맞붙은 노몬한 전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전투 직전까지 일본군은 무적이었다. 근대화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국 군벌과의 전쟁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이겼다. 그러나 노몬한 전투에서는 박살이 났다. 병력의 3분의 1이 죽거나 다쳤다. 사실상 궤멸이다. 최신예 전차, 중포(重砲), 항공기로 무장한 소련 기계화부대에 백병전(白兵戰)으로 맞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무모했던 것은 전력이 뒤진 중국군과의 전투 경험 때문이었다. 중국군에게는 그런 전술로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은 기계화부대가 대세인 시대로 바뀌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사건이 군의 실력을 폭로하는 경우도 있다. 1987년 5월 28일 마티아스 루스트란 서독의 19세 괴짜가 경비행기를 몰고 소련 영공을 유유히 통과한 뒤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에 착륙한 사건이 바로 그렇다. 이는 소련 군부에 재앙이었다. 1만여 개의 레이더와 요격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이 겹겹이 쳐진 소련 방공망(防空網)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소련의 치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무자헤딘 전사의 게릴라전술에 고전했던 사실이 보여주듯 소련군 전체가 덩치만 큰 약골이란 의심까지 받았던 것이다.
북한 어선의 '노크 귀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북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삼척항 앞바다로 올 때까지 전혀 몰랐다. 한마디로 '안보 참사'다. 우리 군의 진짜 실력이 드러났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더 참담한 것은 청와대가 정확한 실상을 알고도 군의 거짓 발표를 방조했다는 사실이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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