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년 위나라가 촉나라에 쳐들어갔다. 촉나라의 황제 유선(劉禪)은 순순히 항복하고, 촉나라는 멸망했다. 위나라에서는 그에게 안락공(安樂公)의 벼슬을 내리고, 위나라 수도 허창(許昌)에서 살게 했다.
유선은 아비 유비(劉備)와 달리 포부도 없었다. 허창에서도 그는 여전히 놀기를 즐겼다.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유선을 불러 자주 술을 마셨다. 사마소는 연회를 열고 촉나라 사람에게 촉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유선을 따라온 촉나라 관리들은 눈물을 흘렸다.
사마소가 유선에게 물었다. "촉나라 생각이 안 나시오?" 유선은 "지금 즐겁기만 하오. 고향 생각이 안 나오"라고 했다. 사마소는 더 이상 유선을 감시하지 않았다.
즐거워서(樂) 촉나라(蜀)를 생각하지 않는다(不思)는 낙불사촉(樂不思蜀)의 유래이다. 현재의 생활을 즐기며 고향이나 조국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나 그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선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조에게 쫓겨 어린 유선은 아비와 사별할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장수 조운(趙雲)이 목숨을 걸고 유선을 구출해 유비에게 바쳤다. 유비는 아기 유선을 팽개치며, "아이 때문에 유능한 장수를 잃을 뻔 했소"라고 했다.
유선은 황제가 되어서도 제갈량과 같은 권신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데 포로로 위나라에 와서는 시름을 놓고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적국에서 안락한 삶을 찾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재 한국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를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돌아오고 있다. 1940년 통계를 보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10% 정도가 해외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후손이 고향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결혼 이주여성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들도 정착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들을 낙불사촉하게 하는 너그러움과 지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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