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의 새콤달콤 과학 레시피] 박테리아, 냄새 맡고 꼬리를 살랑살랑

박테리아,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페로몬 향수를 뿌리면 데이트에 성공할까? 요즘 사랑의 묘약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는 페로몬 향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페로몬은 원래 고양이나 개와 같은 동물들이 이성을 찾아 짝짓기할 때에 분비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사람도 페로몬이 든 향수를 뿌리면 상대 이성의 호감을 더 살 수 있다고 홍보하며 페로몬 향수를 팔고 있다. 진짜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람이나 동물은 향기뿐만 아니라 여러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손톱만큼 작은 것보다 수만배나 더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가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더군다나 박테리아가 냄새를 맡고 좋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니. 박테리아가 어떻게 냄새를 맡는지 살짝 들여다보자.

◆장롱 속 발암물질 좀약

아버지의 냄새라고 하면 쾌쾌한 담배 냄새가 연상된다. 그리고 하얀 알사탕처럼 생긴 좀약에서 나는 박하향을 맡으면 고향집 안방의 장롱이 생각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상비약처럼 좀약을 장롱이나 화장실에 걸어두었다. 바로 세균이나 벌레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요즘도 가끔 좀약을 화장실에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좀약의 정체가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충격적인 사실이다. 좀약의 주성분은 나프탈렌이다. 생각해보면 벌레를 죽일 정도로 독한 물질이면 사람에게도 해로울 수 있다는 의심을 해볼 만도 한데 오랫동안 의심 없이 믿고 써왔다.

미국 보건후생국은 2006년에 나프탈렌을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이처럼 독성이 있는 나프탈렌이 들어있는 물을 마시면 구토, 복통, 설사를 일으킬 수 있고 장기간 마시면 신장독성이나 간독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가 2013년부터 나프탈렌을 특정수질유해물질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나프탈렌은 독성이 있어서 먹거나 피부에 닿으면 해롭다. 나프탈렌 냄새를 조금 맡았다고 당장 큰 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하얀 알사탕처럼 생긴 좀약을 어린아이가 사탕으로 알고 먹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나프탈렌 먹는 미생물

길을 걷다 소똥을 밟으면 재수없다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그런데 쇠똥구리는 소똥을 보면 빵긋 웃으며 양껏 한 덩어리 만들어 자기 집으로 굴려 간다. 이처럼 우리는 발암물질이라고 싫어하는 나프탈렌을 맛있게 먹고 사는 미생물이 발견되었다.

2009년에 태안 갯벌에서 알테로모나스라는 미생물이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중앙대학교 공동 연구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미생물이 나프탈렌을 먹고 분해한다.

그냥 어쩌다 나프탈렌을 만나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알테로모나스는 화학주성에 의해 나프탈렌이 있는 곳으로 스스로 움직여 가서 나프탈렌을 먹고 다른 물질로 분해한다. 이 원리를 밝힌 연구결과가 사이언티픽 리포트 학술지에 2016년에 발표되었다.

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이 기술을 좀 더 발전시키면 물속에 있는 나프탈렌 발암물질을 미생물을 이용해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박테리아,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냄새 잘 맡는 박테리아

박테리아가 그냥 막연히 떠돌아다니다가 먹이를 만나면 먹고 해로운 물질을 만나면 생명의 위협을 받고 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무리 작은 세포 하나가 전부인 단세포생물이라고 하더라고 살려면 계속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리고 생명에 해로운 독성물질은 열심히 피해야 한다.

최근에 박테리아들도 특정 냄새를 맡아서 이동한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박테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0.002 mm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 세포 하나가 전부인 생명체다.

이렇게 작고 머리도 없는 단세포생물이 특정한 화학물질의 냄새를 맡고 이동한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는데 그 원리는 바로 화학주성이다. 화학주성이란 생물이 어떤 물질을 감지하여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오크리치 국립연구소의 이고르 주린 박사 연구팀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의 50퍼센트 이상이 화학주성을 가진다는 연구결과를 2010년에 사이언스 시그널링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박테리아들이 화학주성을 갖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많은 박테리아들은 특정 화학물질을 감지해서 그 화학물질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든지 피해서 도망간다.

이를 위해서 박테리아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우선 박테리아의 수용체가 특정 화학물질을 감지하고 반응 조절자가 편모 꼬리의 움직임을 조절하여 움직이도록 한다. 또한 박테리아가 움직이다가 방향을 바꿀 때에 관여하는 여러 단백질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박테리아가 화학주성에 의해 특정 화학물질 쪽으로 가까이 가거나 도망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복잡한 세포 내 생체 센서와 단백질 기계들이 연결되어 잘 작동해야 가능하다.

◆꼬리 흔들어 헤엄치는 박테리아

박테리아가 냄새를 맡았으면 어떻게 이동해갈까? 바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헤엄쳐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대장균은 보통 4~10개 정도의 긴 실처럼 생긴 편모를 가지고 있다. 이 편모를 그냥 흐느적거리며 흔들어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파워를 내는 생체모터에 연결되어 강력한 힘에 의해 회전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박테리아는 이 편모를 시계반대방향으로 프로펠러처럼 회전시켜서 앞으로 간다. 그리고 방향을 바꾸고 싶을 때에는 여러 개의 편모 중에서 일부를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켜서 방향을 바꾼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서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해간다는 것이 자세히 밝혀졌다.

그런데 박테리아 중에는 긴 꼬리인 편모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있다. 이처럼 편모가 없는 박테리아는 작은 솜털과 같은 섬모를 이용하거나 그냥 미끄러지듯 움직여서 이동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박테리아가 화학주성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1880년대에 엥겔만과 페퍼에 의해 밝혀졌다. 이후 1930년대에 화학주성이 의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발견되면서 자세히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야 박테리아의 화학주성과 관련된 유전자나 세포 내 단백질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박테리아의 성질을 이용한 나노로봇이나 치료 약물전달 기술이 개발되어 요즘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들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유익하게 쓰일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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