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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마지막 한 명까지…" 경북 영천 518고지 유해발굴 현장

1950년 8월 25일부터 보름 간 영천서만 5천800여명 전사
"사망 당시 자세 그대로… 치열한 전투 현장 연상 가슴아파"

국방부 유해발굴단 장병과 50사단 장병들이 21일 오후 경북 영천 518 고지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국방부 유해발굴단 장병과 50사단 장병들이 21일 오후 경북 영천 518 고지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21일 오전 9시 경북 영천 금대리 518고지. 가파른 산길을 50분가량 헤치고 올라가자 작은 호미를 손에 든 국군 장병 100여명이 일렬로 앉아 조심스레 땅에 깔린 낙엽을 걷어내고 있었다.

육군 제50보병사단 영천대대 소속 김인혁(26) 중위가 호미로 붉은 흙을 한 꺼풀 걷어내자 녹슨 카빈소총 탄피가 튀어나왔다. 그 옆의 한 장병은 M1소총 탄두를 찾아냈고, 북한군이 쓰던 '모신나강' 소총 탄피도 7점이나 발견됐다.

김 중위는 "유해가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고, 보통 탄피나 탄두, 전투복 단추 등이 주로 나온다"고 했다. 69년 전 이곳이 낙동강 전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열한 고지전(高地戰)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제50보병사단 영천대대는 지난 16일부터 이곳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진행 중이다. 이날 육군은 실종자의 유해는 찾지 못했지만, 탄피와 탄클립 등 95점의 유품을 찾아냈다.

◆ 보름 만에 '5천800여명' 잠든 땅

1950년 8월 25일, 평화롭던 영천에 첫 포성이 울렸다. 개전 두 달째를 맞아 한껏 기세를 올린 북한군의 공세가 시작되는 신호였다. 기습 남침 이후 후퇴를 거듭한 국군은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까지 물러난 상태였다.

만약 영천이 돌파당하면 북한군은 단숨에 대구와 경주를 점령하고, 국군을 동서로 분단해 포위·섬멸할 것이 뻔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9월 9일까지 15일간 북한군 15사단과 국군 8사단은 명운을 건 싸움을 벌였다. 국군은 치열한 고지전을 거쳐 북한군 15사단을 섬멸하고 방어선을 굳히는 데 성공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50사단 장병들이 21일 오후 경북 영천 노항리 518 고지에서 6.25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50사단 장병들이 21일 오후 경북 영천 노항리 518 고지에서 6.25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0사단 영천대대장 김재철(45) 중령은 "영천에서만 약 1천800여명의 아군과 4천여명의 적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굴된 유해는 2001년 이후 약 345구에 불과하다"며 "그 중 518고지에서만 107구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산 북쪽 사면에 있는 나무는 남쪽 사면의 나무보다 눈에 띄게 가는 편인데, 포탄에 맞아 모두 쓰러지고 새로 심었기 때문"이라며 "그만큼 전투가 치열했다는 의미지만 땅을 하나하나 파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유해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조심스레 흙을 걷어나가다 보면 69년 전 참호를 팠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정재형(23)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상병은 "산소에 노출됐던 흙은 다른 흙과 구분이 쉬워 금세 참호였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유해나 유품이 대량으로 발굴되곤 한다"면서 "특히 보존 상태가 좋은 유해가 발굴되면 치열한 전투 당시의 사망 자세 그대로 남아있어 가슴 아프다"고 했다.

문경시 불정동 어룡산(617m) 8부 능선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6·25전쟁 전사자 유해 2구를 발굴해 수습하고 있다. 매일신문DB
문경시 불정동 어룡산(617m) 8부 능선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6·25전쟁 전사자 유해 2구를 발굴해 수습하고 있다. 매일신문DB

◆ 12만여명 아직 차가운 땅속에

국방부는 지난 2007년 유해발굴감식단을 출범해 체계적인 유해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2000년 6·25 전쟁 50돌을 맞아 한시적으로 유해발굴에 나서기도 했지만, 선배 장병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아예 유해발굴을 전담하는 부대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12만명에 달하는 전쟁 실종자들은 차가운 땅속에 잠들어 있다. 조수훈(32)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장은 "당시 전사자가 총 16만2천여명에 이르는데, 이중 3만여명 정도가 현충원에 안장됐고, 13만3천여명이 실종됐다"며 "현재 약 1만1천여명의 유해를 찾았다. 나머지 12만명의 선배 전우들도 어서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뼈조차 부식되기 시작하면 유해발굴은 점점 어려워진다"고 걱정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문경시 불정동 어룡산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문경시 불정동 어룡산에서 '9분대 권완중' 글씨가 새겨진 6·25 전사자 먹물통 유품을 수습하고 있다. 매일신문DB

김재철 영천대대장은 "지난해 발굴한 11구의 유해를 보면 아직 식별은 가능하지만, 얇은 뼈는 대부분 사라졌고 허벅지나 팔 등 굵은 뼈만 나오는 실정"이라며 "두껍다는 두개골 뼈도 거의 종잇장보다 약간 굵은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발굴하고, 파낸 흙에도 혹시 유해가 있을까 살펴보는 통에 발굴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했다.

고생 끝에 69년 세월을 건너 가까스로 발굴한 유해조차 유가족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만1천여명의 유해를 찾았지만,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132구에 불과하다.

조수훈 팀장은 "가까스로 찾아낸 유해가 유가족을 찾을 수 없어 '무명용사'라는 이름을 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며 "현재 약 3만6천여명 실종자의 DNA가 확보됐지만, 나머지 10만명의 DNA는 확보되지 않았다. 더욱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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