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8일 오후 경북 군위고등학교 '원예 테라피(therapy)' 수업.
고2 남녀학생 10여명이 원예심리지도사(플로리스트) 선생님을 따라 꽃바구니 꾸미기에 나섰다. 최대한 플로리스트 선생님처럼 해보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도전하는 꽃꽂이라 꽃바구니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꽃꽂이에 알맞게 꽃송이와 줄기를 손질하는 것이다. 가시를 떨어내고, 잎을 정리한다. 꽃바구니 크기와 어울리는 키가 되도록 줄기를 자른다. 바구니에 장미꽃을 꽂고, 쏠리다스터(국화과 교잡종 식물)를 꽂고, 과꽃을 꽂는다.

같은 품종의 꽃, 같은 수의 꽃송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꽂느냐에 따라 꽃바구니 모양은 크게 달라진다. 2시간 동안 아이들은 끊임없이 플로리스트 선생님께 묻고, 모양이 좋으면 환호하고 어설프면 아쉬운 탄성을 터뜨린다.
"엄마한테 드리고 싶어요."
"담임선생님께 드릴 거예요."
"남자 친구한테 줄 거예요."
꽃바구니를 완성한 학생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꽃처럼 피어난다.
◇ 매사에 무심하던 학생들 흥미 보여
군위고등학교는 경북도교육청 교육사업의 하나로 2017년부터 학교안 대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원예 테라피'는 '푸드 테라피(음식만들기)' '바리스타체험' '목공체험' '볼링' 등과 함께 대안교실 프로그램 중 하나다.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의 동의를 받아 1주일에 1회 대안교실에 참여한다. 교과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 평소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주 대상이다.
군위고 홍덕한 진로진학부장 선생님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무척 재미있어 한다. 평소에 통 질문이라고는 하지 않던 아이들이 질문을 많이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도대체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고, '어떤 수업을 받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낼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원예를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고, 진로체험까지 할 수 있다. 설령 관심이 있더라도 고등학생이라 체험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학교에서 체험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덧붙인다.
기자가 참관한 이날 원예수업에서 학생들은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주었으며,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한 여학생은 수업시작 직전까지도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얼굴이 굳어있었는데, 꽃바구니가 조금씩 모양을 찾아가자 그야말로 꽃처럼 피어났다.

◇ 원예활동으로 정신·육체 건강 도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좀 모양이 안 나는 꽃도 꽃바구니 속에서 위치만 잘 잡으면 얼마든지 아름답다. 목이 꺾인 줄기도 제자리만 찾으면 고고한 분위기를 낸다. 화려한 꽃은 화려한대로, 은근한 꽃은 은근한 대로 매력이 있다. 어디에, 어떻게 꽂느냐가 핵심이다."
각급 학교와 아동센터, 노인병원, 복지관 등에서 원예 테라피 수업을 하고 있는 배진선 원예심리지도사(플로리스트)가 꽃꽂이 수업 중에 반복하는 말이다. 이 말은 '꽃꽂이 작업'의 핵심 매뉴얼인 동시에 그가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가치관이다.

심리지도사인 그는 "이미 영국에서는 의사가 공식 처방전에 진통제 대신 '일주일에 몇 번 원예 활동하기, 일주일에 몇 번 숲 속 걷기'를 처방하고 있다. 단순한 '플라세보 효과'가 아니라 실제로 진통 효과, 안정효과가 있음이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며 "원예활동은 사람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줄 뿐만 아니라 손과 어깨근육의 운동량 증가와 감각을 자극함으로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원예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만족감과 감사하는 마음이 싹 트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삶의 질이 향상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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