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중요한 결정에서는 늘 배제되었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오직 자손을 낳아 기르는 것만이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길이 막혀 있었던 때, 지성과 천재성, 대담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여성들도 많다.
이 책은 우리가 기억해야할 당당한 여성 100인에 대한 헌정서다. 프랑스의 예술사학자인 지은이 나탈린 코프만 켈리파는 최초의 여성 '루시'가 존재했던 320만년 전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간을 살펴 유명 인물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빛난 삶을 산 여성 100인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신분의 장벽 넘어 자기 실현
아그노디케는 역사상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라 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오로지 남성만이 산부인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아그노디케는 남장을 하고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의술을 익혔다. 아그노디케는 의료행위를 하다 법을 어긴 죄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여성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법원은 여성에게도 의술의 문을 열도록 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여성 최초의 자연과학자다. 1699년 남성만이 예술과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때다. 그녀는 유충과 성충 사이의 발육단계인 님프라고 불리우는 번데기를 관찰하는데 온통 관심이 많았다.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과 생활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곤충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픽션 영화 '양배추 요정'을 찍은 알리스 기는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천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고 제7 예술의 세계를 열었지만 영화계에서 잊혔다. 해변에서 몸에 붙이는 수영복을 입은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아네트 켈러먼 덕분에 여성들은 코르셋과 모직 드레스, 모자가 없이도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남성과 동등한 여성 위해 투쟁
"가장 억압받는 남성도 아내라는 존재를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아내는 프롤레타리아 중의 프롤레타리아다." 1830년 플로라 트리스탕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리보장이 대두되던 때,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가 연합할 것을 강조했던 플로라는 집회를 여는 등 활동하다 열병으로 사망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89년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여성이다. 과격한 방식으로 불을 지르고 건물을 박살내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남편과 딸 둘도 모두 여성참정권 운동에 동참했던 대단한 가족이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수품 공장에서 여성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보수 정치권의 여성참정권을 얻어냈다. 1921년, 마거릿 생어는 피임에 대해 알리며 여성의 신체 자유를 외쳤다. 여성의 몸이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때, 피임 클리닉을 열고 산아제한 연맹을 창설해 여성의 몸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왔다.

◆비웃음 견디며 불태운 학구열
계몽주의 과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는 1724년 웃음거리가 되면서도 뉴튼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춰 19세 나이로 결혼해 아이 셋을 낳은 뒤 의무를 다했다며 이혼했고, 이후 철학자 볼테르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지적 탐구에 매진했다. 여성이 지성을 지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같은 여성도 비웃던 때, 그녀는 과학 논문을 쓰고 이태리 볼로냐 대학 교수가 됐다. 1832년, 오로르 뒤팽은 소설을 쓰기 위해 남성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해야 했다. 문학계에 들어가기 위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려야만 했던 때다. '앵디아나' '발랑틴' '렐리아' 등 명작을 남겼다. 1933년, 섹스 심벌 헤디 라마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수식어로 유명했던 그녀는 오늘날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발명했으나 세상이 그녀에게 기대한 것은 아름다운 외모였고, 기술 발명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1953년 남성 연구원들과 함께 DNA 구조를 알아냈다. 남성 연구원들이 훗날 노벨의학상을 받게 될 논문을 발표할 때, 그녀는 연구에서 손을 떼라는 편지를 받고 떠나야했다.

◆아름다운 세상 연 선한 마음들
이레나 센들레로바는 전쟁 중인 1939년 바르샤바 게토에서 유대인 어린이 2천500명을 목숨 걸고 구해냈다. 이레나는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들어주거나 안전한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 보호했다. 구출한 아이들의 신원을 기록해두었다가 전후에 아이들이 실제 신원과 가족을 찾을 수 있게 있도록 했다. 로자 파크스는 'NO'라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인권운동을 일으켰다. '흑인 인종분리법'과 'KKK단이 활개치던 1955년, 로자는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 버스 운전사에게 "싫어요"라는 한마디를 한 것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가 던진 거부 한마디에 미국에서는 모든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1967년, 캐서린 스위처는 마라톤에 참가해 여성도 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성은 800m 이상 달릴 수 없다고 당연히 여기지던 때, 캐서린은 'K.V. 스위처'라는 이니셜로 참가해 주변의 쏟아지는 욕설을 참고 완주에 성공했다. 2009년 열한 살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레반 지하의 인권실태를 고발했다. 부르카 속에 갇혀 학교에 갈 권리도, 공부할 권리도 빼앗긴 현실을 옮긴 말랄라의 글이 주목받아 17세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344쪽 3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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