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나는 왜 주사 맞아야 하나요?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나는 소아재활을 전공으로 하는 의사다. 뇌성마비, 정신지체, 발달지연 등 발달의 문제를 가진 소아환자들을 주로 본다. 재활치료의 특성상, 게다가 어린 아이의 발달이란 게 그렇듯 수년씩 진료를 보러 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내게 오년 넘게 치료받고 있는 진규(가명)는 아주 힘든 아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뇌손상을 가지고 태어나 이 아이는 걷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었다. 목을 가누기 까지 일년, 혼자 앉을 수 있을 때까지 일년이 걸렸다. 지칠 법도 한데 진규의 부모님은 늘 웃는 얼굴로 감사하다고 했다. 진규 때문에 생업도 바꾼 눈치였다. 가끔 이런 보호자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그러던 진규가 드디어 걸었다. 팔다리의 경직으로 배를 내밀고 까치발을 한 채 뒤뚱뒤뚱 걷는 게 다였지만 치료한 지 3년반만에 진규가 처음 걷던 날, 부모님도 나도 울음을 터트렸다. 친구들이 유치원가고 놀이터갈 때 치료실을 오가며 그 힘든 과정을 오롯이 견뎌낸 진규가 대견하고 또 대견했다.

하지만 그건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진규의 보행 패턴을 바로 잡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했지만 커갈수록 진규는 경직성 뇌성마비 환자의 특징을 저명하게 보였다. 워낙 뇌손상이 심했던 때문이었다.

진규는 키가 자라고 근육이 커지면서 성장에 따라 경직이 다시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고, 결국 경직치료를 위해 주사시술을 하기로 했다. 진규가 자고 있는 상태로 시술은 이루어 졌지만 6살 어린아이에 불과한 진규는 진료실에서 '주사'라는 말만 나와도 울먹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심해진 경직 때문에 보호자에게 세 번째 주사시술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건네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진규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주사 맞아야 해요? 내 친구들은 아무도 주사 안맞는데…" 순간 가슴에 날카로운 칼을 맞은 것 같았다. 눈언저리가 시큰해져 왔다.

진규에게 필요하다고 어른들이 하는 치료들이 진규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차별같은 거였던 거다. 나는 대기 환자가 너무 많이 밀린다는 간호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여섯 살 진규와 장애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대해 30분쯤, 두서없는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몇 년전, 뇌수술을 하고 말도 행동도 어눌해져 재활치료를 받으러 입원한 고등학생 친구를 병실에서 만났다. 달리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했던 그 친구는 이젠 걷는 것도 힘겨운 상태였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내 환자는 병신이라고 친구들이 계단에서 밀어서 이마를 꿰맸다고 했다.

내 친구가, 내 환자가 죄가 있어서 장애를 가지게 된 건 아니다. 나의 많은 환자들, 장애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도 죄가 있어서 장애를 가지게 된 건 아니다. 그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누군가의 사랑스런 아들로 태어났고, 소중한 존재이고 진실된 친구이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것, 자기와 다른 것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친구들은 주사 안맞는데 왜 나는 주사맞아야 되냐고 눈물 흘리는 이 세상의 많은 진규들에게, "니가 잘못해서가 아니야, 넌 누구보다 잘하고 있어"라고 건네는 한마디로, 당신의 아들이었을 수도 있는 진규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씩씩한 이 세상의 수많은 진규들에게 박수를!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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