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⑥]박영귀 작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아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이것을 씹어 먹어"하며 나 보고 멸치를 집게로 집어 소포에 넣어 줄 수 없느냐고 집게를 나한테 내민다. 나는 화를 버럭 내며 "아니야! 이것은 내 일이 아니야!" 하며 거절했다. 급기야 완전무장(?)을 한 청소부가 그 소포를 처리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름에 수취인이 없어 우체부가 보관하고 있던 소포 하나가 터져 바닥에 흥건히 액체가 고여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우체국 전체가 난리가 났다. 한국 시골에서 김치를 비닐봉지에 넣어 소포로 보냈는데 높은 온도로 발효가 되어 비닐봉지가 터진 것이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 번도 이런 냄새가 없던 곳이었기에 더 했다. 한국에서 온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왔다. 괜스레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이게 뭐냐고 직원들이 물었다. 한국에 갔다 온 직원은 독가스를 만드는 핵폭탄이라고 킬킬거린다.

그들이 킬킬대는 것은 아무런 마음 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나와 집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였다.

내 앞에서는 말은 안 하지만 그들이 꾹 참고 있는 게 있다. 멸치 사건 때, 누가 뒤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격지심인가 하고 그냥 흘려버린 게 있다. 보신탕 이야기다.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과 TV 방송에서는 연일 톱기사로 떠들어 댔다. 동남 아시아 사람들이 옥수수 밭에서 개를 잡아먹은 사건이다. 이곳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는데 개를 죽이고 먹기까지 했으니 살인사건보다 더 크게 취급했다. 그 불똥이 중국과 한국 사람에게 튀고, 조그마한 나라, 만만한 한국이 제물이 되었다. 개 목을 밧줄로 묶어 나무에 달고 몽둥이로 때려잡는 사진을 나한테 보여 주었다.

나도 개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한국 전쟁 때 먹을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먹었다고 했다.

너의 들은 먹을 것이 풍부한데도 다람쥐도 잡아먹고, 말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지 않느냐 먹는 것 가지고 더 이야기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나와 집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들을 한 두 사람씩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도 같이하고 수시로 있는 파티에는 김치와 멸치조림를 달곰하게 요리해서 항상 맛을 보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겁을 내어 김치 조각을 칼로 썰어 한 조각 먹고 콜라 한 모금 마시던 백인들이 지금은 나보다 더 잘 먹는다. 그런데 멸치는 죽었다 깨어나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백인들처럼 신사는 없다.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남을 존중해 준다. 다만 소수의 성질 나쁜 자들이 문제다. 어디 가나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나쁜 사람 때문에 우체국과 백인을 상대로, 인종 차별로 E E O(균등한 고용기회 위원회)에 제소를 했다.

수개월의 심의 끝에 나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영어문제로, 하고 싶은 표현을 제대로 못 해서다. 그러나 여러 백인이 도움으로서 이겼다.

우체국은 철저한 군대식이다. 모든 게 선임 순이였다. 수습 기간을 지나 정식 직원이 되는 것도, 휴가도, 선임 순이였다. 다음에 정식 직원이 되는 것은 내 차례였지만 엉뚱한 백인이 먼저 되었다. 우체국장, 상급 기관에 건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권리를 위해 싸워야만 했다. 그동안 미국 생활에서 익힌 경험에서다. 여기서는 울지 않으면 젖을 안 준다.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요트공장에 다닐 때, 수습 기간이 끝내면 진급하기로 했지만, 진급이 안 되어 물어보니 담당자가 "너는 진급을 안 해줘도 만족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진급해 주기를 원하느냐?"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그래서 수없이 싸웠다. 싸워서 이길 때마다 나는 집사람을 부둥켜안았다. 집사람은 울었다. 타국에서 사람도, 언어도, 풍습이 다른 이곳에서는

부둥켜안을 것은 집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은 그들이 잘못과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포용하는 신사도에 있었다. 그 후로 백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틀려졌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유학생들과 교민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태극기를 보며 목사님의 피아노 반주로 애국가를 불렀다.

그리고 추석에는 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목사님이 주도하여 종교 구분 없이 참가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카고에서 한국무용단을, 미시간주에서 태권도 시범단을 초빙해, 이곳 백인들을 위시한 타민족에게 한국을 보여 주었다. '나에게 준비된 미래는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해 보았더니 무언가 되더라' 얼마 전에 우리 부부는 은퇴했다.

긴 우체국 근무였다. 막내가 미 육군 장교로 한국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하다 제대했다. 내가 사는 집에는 에이커 땅에 한국 대추나무, 나주 배나무, 감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가 뿌리를 박고 살고 있고, 딸 하나와 아들 둘도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여기를 떠날 수 없다.

해마다 채송화, 분꽃, 봉숭아, 활련화, 석류꽃, 벚꽃, 백일홍, 나팔꽃, 과꽃, 할미꽃이 피며, 상추, 한국애호박, 한국 찰옥수수, 배추, 무, 쑥갓, 푸추, 고추, 마늘, 한국오이, 들깨, 대파를 매년 재배한다.

겨울에는 건강 때문에 구매한 콘도가 하와이주 와이키키에 있어서 거기서 지낸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다.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살다가 가족에게 부담 안 되게 멋있게 잠자는 훈련을 며칠 한 다음 죽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유언서를 변호사 앞에서 작성했다.

첫째로, 생명 보조 장치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죽은 다음 우리의 몸을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 (이 사항은 운전 면허증에도 명시되어 있다. 운전 면허증 사본 첨부) 한다는 내용이다. 마음이 가볍다. 이것을 우리 부부는 행복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고국에 없는 동물이 있다. 주머니쥐다. 재미나는 동물이다. 행동이 느리고 고양이 크기 정도며 새끼들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보다 큰 동물이나 움직이는 물체 앞에서는 처음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공격할 것처럼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피하거나 죽은 시늉을 한다. 그래서 도로에 많이 죽어 있다. 자동차가 오면 적으로 생각하고 차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죽은 척해서 라고 한다.

집사람은 나와 달리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자랐지만 부족한 먹이를 위해 발 버둥댄, 나를 위해 한마디 군소리 없이 따라 준 노고에 더욱 사랑을 느낀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듣다가 짜증 나니 입을 벌리고 공격할 것 같은 주머니쥐를 보고

무심코 "너 디아벨리 변주곡을 먹을 줄 아느냐" 고 했다

(나는 종교가 없어 스테인드글라스에 여과되지 않은 서울이 불면증이다)

지난날을 잊지 못해 벌린 입에 쌀알을 퍼부어도 다물지 못하고 죽어있는 모습의 거북스럽고 답답한 표현은 빙판길, 연탄재를 아무리 뿌려도 내려가기 어려운 산동네 엥겔계수였다

장떡과 사카린을 넣은 밀기울 빵을 신기하게 여긴 문학소녀 애인의 언어는 '시'였다

애인의 언어에는 그런 떡과 빵은 없었다 별과 달, 꽃과 나비, 사랑과 그리움, 바다와 등대 따위의 환상뿐이었다

사랑은 영원하다 했고 사랑만 있으면 어떠한 부족함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애인은 식도가 긴 달동네 목구멍까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다가 도중에 주저앉아 버렸다

산동네 정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젊은 관악산 바람들은 같은 시간대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움직였다 후진 골목길을 휘돌아 설레발쳤다. 굼뜬 쥐는 없었다.애인들의 변주는 쉽게 아물었다.지금도 달동네 가로등은 헛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가?

'먹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서울'

안녕하십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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