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하노이에서 맥나라마 전 미 국방장관, 응우엔 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 등 베트남전쟁 지도자들이 비공개리에 모였다. 왜 더 빨리 전쟁을 끝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적과의 대화'는 이 회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3일째, 이틀간의 토의를 바탕으로 각자 의견을 정리했다. 당시 북베트남 외무부 대미정책국장은,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와 같았다. 대국은 소국을 장기판 위의 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소국에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전쟁 주역인 맥나라마는 "베트남이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국을 위협한다고 봤다. 역사적으로나 베트남은 앞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존슨 대통령 특별보좌관 바터는 "공습을 통해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다. 군사적 위협이 대화를 견인한다는 가설이 잘못됐음을 알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측은 "폭탄을 퍼부으면서 협상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기만으로 생각했다"고 응수했다.
맥나라마는 결론적으로 "쌍방에 오해가 있었다. 상대방의 목적과 의지를 알았다면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다. 종전 협상은 훨씬 이전에 가능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베트남 측이 그것을 언제 알았느냐고 묻자, 맥나라마는 "그저께 밤이었다.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미국이 한 평화 제안을 믿는가"라고 물었다. 베트남 측은 "지금이라면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
뒤돌아보면, 베트남에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가 아니었으며, 베트남은 중국의 앞잡이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1979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 회의를 통해 베트남전쟁은 서로에 대한 무지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정설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런 어리석음은 왜 반복되는가.
공교롭게 지난 2월 같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실패했다. 현재도 양측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의 앞잡이로 핵으로 미국을 위협한다고 여기고,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제재가 대화를 촉진시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순간 미국이 자신들을 말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오해를 풀려는 한국의 노력을, 미국은 북한의 대변인이라 여기고, 북한은 왜 같은 민족끼리 외세에 맞서지 않느냐고 따진다. 중국이 가세하려 한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한패가 되면, 일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국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면서 각자는 자기의 셈법만을 고집한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리라는 것도, 미국이 북한의 목을 조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
30년 후, 남북미중이 만나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 "그때 알았더라면" "30년 전에도 비핵화가 가능했었다"고 할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대화이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국제사회이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조우했다. 1시간의 단독 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을까. 사진 찍기용이라는 일부의 의심도 있으나, 실무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을 낳았다고 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비핵화의 당사자들은 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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