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코끼리가 상아를 가진 죄

지상 최대 동물인 코끼리의 위용은 상아에서 기인한다. 상아는 오랫동안 변색되지 않고 가공이 쉬워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고급 조각 재료로 이용되었다. 근대 들어 당구공, 피아노 건반, 백파이프, 단추, 체스와 장기의 말 등 생활품으로 쓰이자 상아를 노린 코끼리 밀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19세기 말 200만 마리가 넘었던 아프리카 코끼리가 이제 40여만 마리만 남았다. 1989년 코끼리 사냥이 금지되나 이후에도 매년 3만 마리가 밀렵되었다. 결국 상아의 국제 거래도 중지되었고, 세계 상아의 70%를 소비하던 중국도 2017년 동참하였다.

카펫에 앉아 명상하는 무슬림 술탄을 조각한 18㎝ 높이의 상아제품 탁상종(사진)이다. 프랑스에서 구입했다. 상아로 장식한 고급 생활품은 20세기 초 아르데코 시기에 유행하였다. 이베이가 2008년 상아제품 거래 금지에 동참하면서, 이제는 이 같은 상아예술품은 구하기 어렵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모두 상아가 있으나, 인도 코끼리 암컷은 느리게 자라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최근 아프리카 암컷 코끼리의 3분의 1 이상이 상아 없이 태어나고, 나머지도 상아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밀렵으로 큰 상아를 가진 녀석이 먼저 학살당하고, 작거나 상아가 없는 개체만 생존하니 그 유전자가 후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상아는 코끼리가 먹이를 찾아 땅을 파고, 새끼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방어 무기이다. 상아를 잃고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코끼리들은 결국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많은 동물들이 이미 멸종되었다. 코끼리는 상아를 가진 원죄로 지금도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경북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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