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대다. 예전부터 있었던 세대갈등은 사고의 차이를 넘어 경제적 문제로까지 확산하며 더욱 심각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고, 남녀 간 갈등은 '혐오'로 진화해 서로 공격하기 바쁘다.
이에 매일신문은 창간 73주년을 맞아 각 세대의 중심에 서 있는 대구의 20대, 40대, 60대 남녀 6명의 패널을 한데 모아 여러 가지 사회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세대공감 토론회'를 마련했다. 증폭되는 갈등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보면 분명히 이해의 여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였다.
지난달 26일 매일신문 3층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천선영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60대 대표 정양자·정재용 시니어매일 기자, 40대 대표 김미화 KT 사회공헌팀장과 윤지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연구원, 20대 대표 권민주 'no more new'(노모어뉴) 대표와 채원영 매일신문 기자가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각 세대는 20대의 취업문제 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결혼 등 일부 주제에 대해서는 세대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힘든 시대를 겪은 세대는?

사회를 맡은 천 교수는 "전후세대, IMF세대, 밀레니얼세대 등 연령대별로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도 제각각이다. 사회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저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면서 "각자 살아온 세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20대 여성 권민주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현재 빈티지 의류 렌털 및 판매 온라인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현재 20대가 과거 세대보다는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에 비해 교육 경험과 기회의 문은 더 열린 것 같지만, 실상은 더 좁아졌다. 스스로 기대감은 높지만 모두 획일화된 목표로 살인적 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현실을 20대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힘들다"고 했다.
이에 반해 같은 시대를 살아온 20대 남성 채원영 기자는 "힘들다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인데 이것을 세대로 결집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인 것 같다"며 "세대별로 나눠 비교하는 것보다 개개인이 처한 아픔과 어려움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반론을 펼쳤다.

이에 60대 정재용 기자는 "(채 기자의 경우에는) 일단 취업을 했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니 그런 것 아니냐"고 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그는 "취업난에 부딪혀 결혼마저 못하고 자포자기에 빠지는 20대의 사연은 더 이상 이례적인 뉴스가 아니다"며 "개인적으로 지금의 20대가 겪는 힘겨움에 공감한다"고 했다.
희망이 없어 20대가 어렵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회공헌팀장으로 젊은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40대 여성 김미화 팀장은 "과거에는 노력하면 더 잘될 거라는 희망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조차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을 갖기 힘들다 보니 반작용으로 최근 젊은이들이 순간순간의 삶을 중요시 하는 세태가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고 진단하면서 "내 조카를 봐도 먼 미래의 계획을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1년 안에 남편이랑 유럽 가는 것 등 단기 계획에만 몰두하더라"고 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사태 당시 취업준비를 했다는 40대 남성 윤지영 연구원은 "나 역시 어려운 경제 상황 속,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에 지금의 20대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끝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요즘은 학점, 자격증, 토익, 어학연수, 봉사활동, 인턴생활 등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춰도 취업을 못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면서 "기성세대는 눈을 낮추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지만 꿈을 포기하고 마지못해 눈을 낮춰야 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혼, 필수인가 선택인가?
두 번째 세션은 '결혼'이라는 주제를 놓고 20대와 40대 여성, 그리고 40대 남성과 60대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비돼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천 교수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평균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연령도 훨씬 다양해졌다"면서 "다양한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자연스레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가 언급된다"고 했다.

20대와 40대 여자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권 대표는 "5년 안에는 절대 결혼할 생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스로 발목 잡힐 일이 될까 봐 싫고 그 이후의 일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두 자녀의 어머니로 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 팀장은 "지금도 남녀가 동등하게 가사를 분담하는 것 같지 않지만, 예전에는 남성의 가사분담률이 정말 낮았다"면서 "시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줬음에도 너무 힘들어서 다시 20대로 돌아가면 절대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60대 두 명과 40대 남성은 "결혼을 통해 얻는 것도 많다"며 결혼 예찬론을 펼쳤다.
결혼 전 은행원으로 근무했었다는 정양자 기자는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일을 그만두라고 강요해 결국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는데 당시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이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시기가 지나니 자식 때문에라도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기쁨이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40대 윤 연구원은 "자기 인생을 즐기거나 더 큰 성공 위해 결혼을 포기하는 것은 자기를 지원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배우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라며 "결국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재용 기자는 "지금 60대들은 예전처럼 자식이 노모를 부양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자식의 존재라는 것이 있기만 해도 든든한 것 같다. 늙고 병들었을 때 친구의 존재는 희미해진다"고 했다. 그는 "고학력 여성이 늘면서 혼자서도 먹고 사는 것에 문제가 없어 결혼을 기피하는 것이냐"고 되물었지만, 이에 대해 같은 60대 정양자 기자는 "생계 측면이 아니라 여자가 가정생활에 충실하려면 일정부분 자기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견해에 대해 김 팀장은 "혈연중심의 가족문화도 점점 변하는 것 같다. 요즘은 마음 맞고 의지할 수 있으면 그게 가족"이라고 피력했다. 20대 권 대표 역시" 꼭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나중에 늙었을 때 같이 살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굳이 피를 나누지 않더라도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라면 가족이 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교통약자석, 양보받을 자격?
과거 '노약자석'으로 불렀던 대중교통의 '교통약자석'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천 교수는 "처음에는 '자리를 양보합시다'라는 푯말이 '자리를 비워둡시다'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노약자보호석', '임산부배려석' 등으로 명시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보호석을 따로 둬 공간을 분리하고 서로 섞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정재용 기자는 "예전에는 의무가 아니어도 다 알아서 양보했다. 우리 사회가 인의예지 등 기본적인 덕목을 잃어버리고 각박해지니 규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약자석에 앉을 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는 20대 채 기자의 질문에 정양자 기자는 "한 번도 노약자석에 앉아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간혹 몸이 너무 힘들어 어디에라도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지만 너무 크게 떠들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서 같은 부류에 섞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 그는 "간혹 노인층 중에서도 공간을 나누는 것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나 역시 스스로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노인들의 공간, 젊은이들의 공간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에 권 대표가 말을 거들었다. 그는 "어르신 중에는 공공장소에서 매너를 지키지 않는 분들도 간혹 있다. 고성방가를 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남에게 접촉을 하고, 지하철 안에서 침을 뱉는 경우도 봤다"면서 "그런 행동들이 지금 젊은이들이 가진 에티켓 개념과 너무 괴리감이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낀 세대인 김 팀장이 이런 60대와 20대 사이에서 사소한 하나의 개선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고속도로 나들목(IC)에서 표시 하나만 바꿨는데 만성적으로 밀리던 하이패스 통로 소통이 원활해지는 것처럼 단순한 구조나 시스템을 바꿨을 때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면서 "사회구성원이 한데 섞이는 것에서부터 사소한 불식과 차이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KT에 근무하고 있는 김 팀장은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 학습 지원을 해보면 노인들은 에티켓을 제대로 배운 적조차 없는 분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말해야 한다는 등의 전화 에티켓을 교육하면 '지금까지 몰랐다'며 고치겠다는 경우가 더 많더라"면서 "노인층은 젊은 사람들처럼 제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인구도 상당한데다, 지금의 시대에 맞는 재교육도 필요하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천 교수는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요구가 있으면 자리를 비켜주는 공감과 배려의 문화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지만, 이것을 굳이 노인세대와 젊은이들을 격리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종합했다.
◆갈등을 넘어 대화를 통해 '공감'으로
이날 장장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열띤 토론의 마무리는 결국 '대화가 해법'이라는 것으로 귀결됐다.
정재용 기자는 마지막 마무리 멘트를 하며 젊은 세대에 대한 약간의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예전에는 어른공경을 집에서도 배웠고, 학교에서도 가르쳤다. 어른들의 가르침이 당장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았다.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너무도 바뀐 세태가 아쉽기는 하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결국 서로를 알지 못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대화가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40대는 끼인 세대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른세대와 어린 세대를 모두 만난다"면서 "대화를 시도해보면 각 세대들의 생각이 결코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대화밖에는 없다"고 했다.
20대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권 대표는 "세대 갈등에 있어서는 웬만하면 그냥 피하자는 마음가짐을 가졌었다. 사실 대화를 하면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것조차 너무 귀찮고 어려웠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채 기자 역시 "기자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반면 일이 끝나면 오히려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타나 괴리감에 힘들었다"고 토로하면서 "이 자리를 통해 비록 힘들어도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는 또 어떻게 바뀔까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정양자 기자는 "요즘 우리 사회는 전 세대를 막론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정말 우리 사회가 많이 아프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이런 자리를 통해 '나이가 지혜를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지식은 젊은 세대들이 더 많다'는 사실과, '옛날에는 맞지만, 지금은 안 맞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서로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부족한 지식을 공유하고 물을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천 교수는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한 세대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면서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이들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고 풀이했다.
그는 "세상이 더 나아진 것이 많은지 나빠진 것이 많은지 무게를 달아봐야 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개방화, 수평화, 포용성, 다양성 등의 단어가 나쁜 의미는 아닌 것 같다"고 전제한 뒤 "지금 우리가 겪는 여러 문제들이 이들 단어와 연관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직접 선택한 가치들이며, 세대를 넘어 건강한 불평불만들을 드러내고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갈등을 줄이고 접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 이주형 사회부 기자, 사진 성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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