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몇 살까지 운전대를 잡으시겠습니까?

김근우 사회부 기자
김근우 사회부 기자

지난 4월 19일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의 한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가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놨다. 올해 87세인 전직 고위 관료 이이즈카 고조(飯塚幸三) 씨가 모는 승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시속 100㎞에 이르는 고속으로 횡단보도를 덮쳐 길을 건너던 여성(31)과 딸(3)이 그 자리에서 숨진 사고였다.

백발이 성성한 피의자는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경찰관의 부축을 받은 채 조사를 받으러 나타나 공분을 샀다. 그는 "가속 페달이 눌린 채 돌아오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없었다. "고령인 피의자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자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숨진 모녀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마츠나가(松永) 씨는 영결식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딸과 아내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사고를 계기로 여러 가지 논의가 이뤄져 교통사고 희생자가 줄어들길 바라며 사진을 공개한다"며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운전을 하지 말아달라.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나는 언제까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기사로 고령 운전자 문제를 짚어 나가며 독자들이 이런 의문을 갖길 바랐다. 신체·정신적으로 몇 살까지 운전을 해도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적어도 나이가 들수록 반응속도나 순발력, 시력 등 운전에 필요한 능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에 가깝다.

2006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나라도 지난 2017년부터 노인 인구가 14%를 넘어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며 관련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대구에 등록된 전체 면허 소지자 156만3천551명 가운데 약 10%인 15만3천263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지난 5월에는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서 A(75) 씨가 순간적인 착각으로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2명이 숨지는 사고를 일으켜 논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뒤늦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인지능력 진단 등 교통안전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흐름이 그저 노인을 운전을 해선 안 되는 '잠재적 교통사고 피의자'로 취급하는 감정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이는 결국 노인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달 초 당진~대전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역주행 교통사고를 일으킨 이는 40대였지만, 조현병 치료를 제때 받지 않아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 고령 운전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부적격 운전자'를 걸러낼 실효성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작고한 기자의 할아버지는 80세가 되던 해까지 구형 '씨에로' 승용차를 몰고 '마실'을 나가시곤 했지만, 어느 순간 운전대를 놓으셨다. 브레이크를 살짝 늦게 밟아 정지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모든 고령자가 이런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결국 사회문화를 바꾸는 것은 제도와 시스템이다. 안전한 도로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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