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그들의 예술 같은 삶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내가 늘 먹는 세트로 주이소." 어느 늦은 저녁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나의 귀에 우리네 할아버지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먹던 햄버거를 내려두고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한참을 쳐다보게 되었다. 어르신은 높다란 의자에 걸터앉으시곤 감자튀김을 드시고 콜라 두 모금에 반 틈 벗겨진 포장사이로 두툼한 햄버거를 한입 베어드셨다. 늦은 저녁시간에 혼자 패트스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드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현대인의 젊은 세대와 다를 바가 없어 사뭇 신기하면서 한참을 쳐다본 나의 고정관념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필자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세계안무축제의 지난 개막초청공연으로 스페인의 정통 플라멩코 작품을 대구에서 최초로 공연하게 됐다. 한 남성 어르신이 티켓예매에 대한 문의를 하셨다. 온라인 예매법을 알려드렸더니 곧 잘 성공하신 모양이다. 많은 관객들이 찾은 공연 날 당일 공연장에 허리가 굽으신 70대 어르신 한명이 공연장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계시는 모습이 나와 통화한 그 어르신 인 듯 했다. 보통 무용공연에서는 안무자와 무용수의 친인척들이 관객으로 공연장을 찾기 마련인데, 그날은 스페인에서 온 아티스트 네명이 출연하는 공연이라 출연진의 친인척도 아니었다.

그날의 공연은 기립박수와 함께 막이 내리고 조금 늦은 시간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 어르신이었다. "아가씨, 내가 처음으로 춤 공연이란걸 봤는데, 내가 이쟈껏 살면서 이런 감동을 받아 눈물 흘려보긴 처음일세. 쟈들이 얼매나 연습을 했을꼬. 세상이 참 멋져졌어. 고맙소."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 측 입장에서는 더 큰 감동의 공연리뷰를 들은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멋진 대사로 느낀 감동이 아니라 현란하면서 때론 숨죽여 보게 되는 춤 사위에 받은 잔잔함의 감동을 마음으로 느끼셨나 보다. 그들의 젊은 세대도 우리와 같이 있었을 테고 나또한 그들처럼 노년의 삶을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가 더 많은 기회로 누리고 있는 예술활동이 죄송하게만 느껴졌다.

누가 노인을 사회에 뒤쳐진 세대라고 했는가? 우리 사회는 노인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과 차별이 자리잡고 있다. 핵가족화로 인해 세대간의 단절이 가중되면서 비노년층 특히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노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노인차별은 세대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 전면에 스며들고 있다. 대구 노인 인구 비중이 2017년 14.0%로 고령사회에 들어갔고, 2025년 20.5%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인구 추이와 고령 친화적 기반시설을 고려하여 도시환경 재생 변화도 중요하지만 노년들의 삶에 메마른 감동과 정서와 신체로부터 상실된 그들의 상처를 예술로 인해 회복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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