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북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마을창고 안. 비린내 같은 악취가 코를 찔렀다.
700여㎡ 규모의 농가형 창고에는 지난달 12일 주민들의 신고로 드러난 의료폐기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곳엔 기존에 있던 불법 적치된 의료폐기물에다 지난 4월 발견된 송곡리·사부리 물량도 옮겨져 있었다. 해당 업체가 문제가 된 송곡리·사부리 의료폐기물을 처리한다며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의료폐기물은 적발 이후에도 소각 등 처리되지 않고 수개월째 그대로 불법 방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의 의료폐기물 불법 적치장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144.6t에 달하는 불법 적치 의료폐기물을 창고 내에 억지로 쑤셔 넣었지만 낡은 건물과 허술한 관리 탓에 바깥에 쌓아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였고, 파리와 모기 등 해충도 들끓었다.
게다가 담장 하나 사이로 인근에 주택이 밀집해 있어 2차 감염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큰 병원에서 나온 의료폐기물 박스에는 수술 후 발생하는 인체 적출물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게 우리 주위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며 몸서리쳤다.
◆허술한 관리시스템
의료폐기물은 올바로시스템(RFID)으로 관리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소각 처리된 것 처럼 위장한 뒤 몰래 불법 적치할 수 있다.
고령과 달성 불법 적치 현장도 의료폐기물의 스티커만 따로 떼 바코드만 찍은 뒤 소각처리된 것으로 위장하는 등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했다.
실제로 의료폐기물을 불법 적치한 문제의 아림환경은 이런 방법으로 경북 고령, 달성, 문경, 김천, 상주, 구미, 경남 통영, 김해 등 12곳에 의료폐기물 1천241t을 불법으로 방치했다.
의료폐기물로 지정된 것으로는 '보건·의료기관, 동물병원, 시험·검사기관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중 인체 감염 등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폐기물과 인체조직 등 적출물, 실험동물의 사체 등 보건환경보호상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폐기물 등이 있다. 또 기저귀, 거즈, 주사기 등도 의료폐기물로 지정돼 있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의료폐기물은 배출처가 4℃ 이하의 냉장설비를 갖추고 보관하다가 등급에 따라 2~5일 내에 소각 처리해야 한다.
◆소각 처리 용량 넘어서는 의료폐기물
문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소각 처리 용량이다.
전국의 13개 소각업체로 들어오는 소각 물량은 117%로 이미 폐기물 발생 순간부터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료폐기물 대란이 일어났는데 대책이 있느냐 는 등의 문제가...
환경부와 국회에서도 의료폐기물 불법 적치 및 처벌, 대책 마련 등에 대해 수차례 논의됐지만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업체에 대해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내리고 싶어도 영업정지에 따른 폐기물 대란이 우려돼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의료폐기물의 발생 물량은 지난 2011년 12만5천여t에서 지난해 22만6천t으로 7년 새 10만여t 늘어났다. 그러나 소각 처리 용량은 18만9천t으로 3만7천t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고령화사회로 갈수록 의료폐기물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독기관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고령의 경우 주민들이 불법 적치장을 발견하고 신고를 했지만 대구환경청은 늑장 출동하는 등 단속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업체를 비호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아림환경의 경우 지난 5년간 전산시스템 상 소각 기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등 불법을 일삼았지만 제때 점검을 하지 않는 등 행정처분도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
아림환경은 최근 주민 동의도 없이 몰래 소각로를 증설하려다 주민들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정석원 아림환경 증설 반대추진위원장은 "의료폐기물 불법 처리가 끊이지 않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당국의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환경당국이 영업정지를 과태료로 대체하는 등 허술한 대응으로 환경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폐기물, 공공영역으로 넘겨야
의료폐기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부족한 소각 처리 시설을 늘이는 방법 밖에 없지만 제도를 개선하면 우선 급한 불은 끌 수가 있다는 게 의료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표적인 것이 노인요양병원에서 발생하는 지저귀다. 관계자들은 "기저귀 물량만 빼도 전체 30%가량을 줄일 수 있다"며 "의료폐기물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인을 포함한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경주의 방폐물관리공단 등 각종 혐오시설처럼 공공처리시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돼야 의료폐기물 처리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도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주민들이 의료공공처리시설을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경주의 핵폐기장인 방폐물처분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주시민 89.5%가 찬성을 보냈던 경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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