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가 대구 할벤져스" 폐지 주워 모은 돈 1천만 원 기부한 남구 할아버지 할머니들 

커피 값 벌자고 시작한 일 어느덧 8년…1톤 트럭 100대 분량
"정부가 노인복지만큼 어려운 아이들 복지에 신경 썼으면 좋겠어"

8년 동안 폐지를 팔아 모은 돈 1천만원을 아동양육시설에 기부한 대구 남구 효성백년가약아파트 어르신 주민들이 3일 아파트 경로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8년 동안 폐지를 팔아 모은 돈 1천만원을 아동양육시설에 기부한 대구 남구 효성백년가약아파트 어르신 주민들이 3일 아파트 경로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투표권이 있는 노인복지는 점점 좋아지는데 어렵고 힘든 어린이들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잖아요. 경로당 회원들이 힘을 합쳐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대구 한 경로당 노인들이 8년 동안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아동 관련 시설에 선뜻 내놓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일 대구 남구 봉덕동 효성백년가약 경로당 회원들은 지역 아동양육시설인 호동원과 대구아동복지센터에 500만원씩 모두 1천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이 성금은 지난 8년간 평균나이 80세를 훌쩍 넘는 경로당 회원 38명이 합심해 폐지를 모아 마련한 것이다.

박이득(84) 경로당 회장은 "20년 전 남구의 한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기저귀랑 우유를 사준 적이 있다"며 "봉사가 끝나고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뛰어와 안기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자고 했을 때 회원 한 명도 반대 없이 응해줘 고마웠다"고 했다.

한때 폐지 ㎏당 가격은 130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갈수록 떨어져 지금은 ㎏당 70원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 100원으로 가격을 잡아도 1t 트럭 100대 분량의 엄청난 폐지를 모아야 1천만원을 모을 수 있다.

이들에게 폐지 수거는 일상이다. 회원들 각자 집에서 나오는 신문과 전단지는 물론 인근 아파트, 봉덕시장, 영대병원까지도 폐지를 주겠다는 곳이 있으면 뛰어가서 가져왔다. 특히 유안병(86) 씨는 불편한 걸음걸이로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에서 폐지를 모아 상인들에게 '지팡이 할아버지'로 이름이 높다.

수거해온 폐지를 펴서 말리고, 정리 후 노끈으로 묶는 작업도 회원들 몫이다. 한번 시작하면 3시간 동안 허리를 못들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 특히 박 회장은 그동안 신문을 너무 많이 접어서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버렸다고 했다.

회원들은 2012년 경로당이 만들어질 당시 회원들이 마실 믹스커피 값이나 벌자고 시작했던 폐지 모으는 일이 이런 뜻깊은 결과를 맺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자(80) 씨는 "대구 시내 경로당 어디에도 우리 박 회장님 같은 분이 없다"며 "1원 한 푼 챙기는 것 없으면서도 폐지가 있는 곳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간다"고 칭찬했다.

8년의 세월 동안 경로당에는 지병으로 몸져눕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회원도 생겼다. 송석자(84) 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남편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송 씨는 "좋은 일에 쓸 거라고 남편이 참 열성으로 폐지를 모았다. 같이 시장을 돌아다니며 주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나만 남았다"면서 "우리가 이렇게 기부하는 것을 남편이 하늘에서 보면 장하다고 칭찬할 것"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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