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정치가 식상해? '보좌관', '지정생존자'의 정치는 다르다

‘보좌관’, ‘60일, 지정생존자’, 정치드라마가 가는 새로운 길

JTBC
JTBC '보좌관'

사실 대중들에게 정치는 그리 호감을 가질만한 소재는 아니다. 현실 정치가 보여주는 실망감이 정치 소재 드라마 시청에 일종의 진입장벽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는 정치드라마들이 시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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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보좌관'

◆'보좌관', 정치인의 뒤편을 들여다보면

JTBC 금토드라마 '보좌관'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에 이런 부제가 붙은 건 그 관전 포인트가 정치인에만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정치인의 뒤에서 실질적인 일들을 하는 보좌관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서 주로 보게 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정치의 겉면'이라면, 이들 뒤에서 실제로 정책법안을 만들고 치열한 생존전쟁을 벌이며 때로는 위험한 거래와 암투를 벌이는 보좌관들의 면면은 '정치의 속내'라고 말할만하다.

정치의 겉면이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대의명분의 세계라면, 정치의 속내는 그런 대의명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복마전에 가까운 권력 투쟁의 세계다. 주인공 장태준(이정재)은 송희섭 의원(김갑수)의 보좌관으로서 그가 걸어가는 길에 놓여진 걸림돌이나 더러운 것들을 치워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송희섭 의원과 당내 원내대표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갑영 의원(김홍파)의 약점을 찾아내 그것으로 정치적 거래를 시도하기도 한다. 법무부장관이 되려는 송희섭 의원을 보좌하는 대가로 그는 의원이 되는 것을 약속받지만,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냉혹한 이 세계에서 영원한 약속도 없고 영원한 동지나 지지자도 찾기 어렵다. 그것은 권력의 꼭대기에 서야 비로소 하고픈 정책도 펼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좌관'의 핵심적인 재미는 장태준 보좌관과 강선영 초선의원(신민아)가 비밀리에 연애를 하는 연인이면서도 이를 속이고 공조하며 서로가 원하는 목적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공적인 관계 속에서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적인 관계로 엮어진 이 두 사람은 그래서 아슬아슬한 정치판의 역학구도 속에서 서로를 도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아채고 이를 이용하려는 오원식(정웅인) 보좌관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위기를 맞는다. 이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판세의 재미가 '보좌관'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이유지만, 그것이 결국 담는 건 정치 역학이 우리가 보던 겉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보좌관'은 이처럼 우리가 겉만 보고 판단했던 정치의 세계를 좀 더 내밀하게 다루며, 그 안에 다양한 인물들의 시각을 얹어 놓는다. 즉 장태준이나 강선영처럼 정치의 최전선에서 뛰며 살벌한 현실 정치의 복마전에 뛰어든 인물의 시선이 있는 한편, 이제 갓 이 세계에 발을 디뎌 여전히 정의를 꿈꾸는 순수한 인턴 한도경(김동준) 같은 인물의 시선도 있다. 또 그 중간 즈음에 걸쳐 현실정치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이상을 놓지 않는 윤혜원(이엘리야) 같은 비서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정치의 뒤편을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보좌관'이 그리는 정치의 세계는 훨씬 다이내믹하다. 막연한 이상과 합리화된 현실 사이의 끝없는 이합집산.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런 과정의 연속이라는 걸 '보좌관'은 보여준다. 막연히 정치 이야기하면 식상하게 느끼며 심지어 무관심해왔다면 이 역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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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60일, 지정생존자'

◆'60일, 지정생존자', 미드를 가져왔지만 우리식으로 해석된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사당에 폭탄테러가 벌어지면서 대통령을 위시한 국가의 리더들이 모두 사망하게 되고 마침 그 날 그 자리에 가지 않았던 환경부장관 박무진(지진희)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60일 간 국정을 운영하게 되는 이야기다. 미국 ABC에서 방영됐던 인기드라마 '지정생존자'가 원작이지만 여러모로 이 드라마는 우리식의 재해석과 현지화가 고려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제목 차이에서부터 드러난다. 미국과 우리의 헌법차이 때문에 '60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추가된 것. 미국의 경우는 승계해서 그 국정의 빈자리를 채우고 재선을 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우리의 경우는 60일이라는 권한대행의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안에 어떤 지도자의 면면을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물론 시간제한은 그만한 긴박감 또한 추가되기 마련이다.

또한 첫 회에 등장한 한미 FTA 협상 테이블의 에피소드 또한 우리식의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자신들이 가져온 엉터리 환경평가서를 근거로 디젤차량을 수입하게 만들려 하자 환경부 장관인 박무진은 그것이 수치적으로 잘못됐다는 걸 지적한다. 협상이 결렬되고 대통령에게 불려간 박무진은 그 환경평가사를 그냥 받아들이자는 대통령의 제안에 거부의사를 밝히고 결국 해임될 위기에 처한다. 또한 폭탄 테러가 벌어진 그 날, 대통령 비서실장인 한주승(허준호)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가던 상황 역시 우리식의 설정이 들어간 부분이다. 결국 해임 위기에 처해 국회의사당에 가지 않아 생존하게 된 박무진은 한미 FTA 같은 통상압력이나, 남북 관계 같은 대외적 상황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60일, 지정생존자'의 관전 포인트는 박무진이라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환경평가서를 두고 자신은 과학자라며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말하는 박무진은 순수와 이상을 가진 정치인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정치와는 사뭇 괴리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이 살벌한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떤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이 드라마의 주요한 재미의 지점이 되는 것. 결국 저 '보좌관'이 여러 인물들이 가진 이상과 현실들을 그 역학적인 관계 구도 안에서 풀어내며 만들어져 가는 정치를 보여준다면, '60일, 지정생존자'는 이상을 가진 정치인이 그걸 지키거나 때론 포기해가며 조금씩 현실 정치에 구현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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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60일 지정생존자'

◆정치가 식상하다고? 그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다

흔히들 정치는 식상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국회의사당 안에서 드잡이를 하며 실력행사를 하는 장면이 뉴스의 한 장면을 장식해도 이제 대중들은 시큰둥해한다. 그만큼 익숙한 풍경이고, 저들이 늘 하는 일이 저런 일이라고 우리는 치부한다. 그러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점점 커져간다.

하지만 그러한 식상함은 어쩌면 생물 같은 정치를 마치 죽은 것처럼 토막 내 어떤 단면만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무관심을 조장해온 결과일 수 있다. 너무 이상적이거나 혹은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모두 정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보좌관'이나 '60일, 지정생존자'가 다루려는 좌절된 이상과 과잉된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타협점을 찾아가는 정치의 이야기는 어쩌면 죽어서 무덤덤해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건 다름 아닌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라는 걸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제 2020년 총선까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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