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가 개발된 이후 지금까지 핵전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공포의 균형', 내가 핵 공격을 하면 상대방도 핵 보복으로 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여기서 생겨난 전략 이론이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이다. 선제 핵 공격을 받아도 남은 핵전력으로 상대방을 보복할 수 있다면 핵무기의 선제 사용은 쌍방 모두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1970년대 이후 미소 간 '데탕트'(긴장 완화)는 이를 바탕으로 했다. 상호 절멸의 공포심 때문에 핵무기를 쌓아놓고도 사용할 수 없다면 이런 상태는 영원히 지속돼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다르게 생각했다. 데탕트는 냉전을 영속시켰고 또 영속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데탕트를 소멸시켜야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에서 소련 핵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 SDI)이 의도했던 것으로, 핵무기와 데탕트의 공존을 당연하게 여긴 시대의 통념을 깨는 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현실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수준에서 미국은 소련을 압도하고 있었고 소련도 이를 알고 있었다.
SDI에 대한 소련의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 당시 유리 안드로포프 공산당 서기장은 레이건이 소련을 기습 공격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소련의 기술 수준이 더 우수했다면 레이건의 구상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판문점 번개회동'을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치켜세우며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는 상상력의 발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열망은 이해하겠지만 상상력의 발동만으로 평화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겠나?
레이건이 보여줬듯 상식을 깨는 정치적 상상력은 상상하는 주체가 현실을 바꿀 힘이 있을 때만 변화를 낳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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