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농업이 경쟁력이다] 20. 텃밭으로 가꾸는 마을 공동체

숲속전원마을 주민들이 이른 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함께 텃밭을 가꾼다.
숲속전원마을 주민들이 이른 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함께 텃밭을 가꾼다.

텃밭 가꾸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마을과 닮은 '동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숲속전원마을(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18가구 45명의 주민들(자녀 포함)은 나이도 직업도 각각이지만 텃밭 가꾸기를 통해 이웃사촌이 됐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이가 있는 30대 부부부터 한창 바쁘게 일하는 40, 50대와 직장에서 은퇴한 70대까지 이 마을 주민 구성은 다채롭다.

◇ 낯설게 만나 이웃사촌 되다

2017년 초 '숲속전원마을'에 입주할 때만해도 이들은 모두 낯모르는 사람들로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마을 한쪽에 마련한 공동텃밭을 가꾸면서 이제는 어른 33명이 마을밴드에 가입해 서로의 소식을 전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밴드;band'= 동호회, 스터디, 주제별 모임 등 공동의 취미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가입해 활동하는 인터넷 공간)

독립적인 생활을 원해 입주하고도 한동안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던 사람들도 텃밭에서 농사 이야기를 나누고, 수확한 채소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벗이 됐다.

'숲속 전원마을'의 공동텃밭은 약 660㎡(약 200평) 규모로, 공동텃밭 안에 약 2,3평 규모로 가구별로 텃밭이 구획돼 있다. 텃밭 입구에는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고, 중앙에는 쉼터인 정자가 마련돼 있다.

이곳 사람들은 봄에 함께 채소모종과 꽃모종을 심고, 채소가 나오기 시작하면 텃밭정자에 모여 앉아 삼겹살 파티, 맥주파티, 수박파티를 연다.

◇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마을

채소 가꾸는 법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이야기 물꼬를 트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2018년 가을에는 마을 마당에서 '가을 음악회'를 열었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대구시내로 나가 오페라 공연관람을 즐기기도 한다.

숲속전원마을 가을 음악회 관람 모습.
숲속전원마을 가을 음악회 관람 모습.

주민들간 마음이 통하고 신뢰가 쌓인 덕분인데, 그 마음의 문을 열어 준 것은 공동텃밭이었다. 주민들 중에는 바쁜 일로 1,2주 이상 텃밭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걱정할 건 없다.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한 60대 주민이 워낙 텃밭과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많아 주인 발걸음이 한동안 뜸한 밭을 보살펴 주기 때문이다.

주민 이경민씨는 "한 마을에 사는 것도 인연인데, 라며 억지로 마을 주민 교류를 추진하고, 모임을 만들었다면 거부감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채소와 꽃을 가꾸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니 저절로 이웃사촌이 됐다. 주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니 한동안 집을 비워도, 남편의 퇴근이 늦어 혼자 집에 있어도 겁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아는 사람,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동네 회복, 청소·관리도 직접

마을 성인 33명이 참여하는 인터넷 밴드에는 정이 넘친다. 다음은 이 마을 여성 주민이 올해 6월 말에 밴드에 올린 글이다.

"오늘 저희 마늘 수확했어요. 제법 알차네요. 텃밭정자에 두었으니 가져가세요.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아래로 답글이 이어진다.

"세상에나! 퇴근길에 2뿌리 가져갈게요."

"와. 축하드립니다."

"예쁘게 나와(자라) 좋네요. 세 쪽 가져갑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뿐만 아니다. 밴드에는 다양한 마을 이야기가 올라온다.

"이번 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마을 대청소합니다. 끝내고 맥주도 한잔!"

"좋아요. 퇴근 후에 뵐게요."

"퇴근하고 열심히 달려갈게요."

마을 공동체가 회복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동네 청소나 분리수거장 정리, 잔디 깎는 일 등 마을 일을 주민들이 직접 한다. 아파트나 대형빌라 등 공동주택에는 관리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동네에는 관리인이 필요 없다. 처음 입주할 당시만 해도 관리인을 따로 고용했으나 텃밭을 통해 친해진 뒤로는 주민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마을 일을 해결한다. 그렇게 이곳은 '공동주택'이 아니라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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