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다국적 군인만 드나드는 사무실에 여직원은 분위기 메이커도 되고 지역 사정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꼬딴은 업무에 아주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월남인 남자와 여자는 대부분 몸이 말랐고 성격은 온순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되면 여간 화를 내는 게 아니다.
당연한 자존감이 있는 민족인데 많이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참을성도 있고 눈치는 아주 빠르다. 꼬딴은 이제 18살, 다 큰 나이지만 체격이 워낙 약해 보이고 표정이 어두워 잘 농담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 여동생 같기도 해 부대 병참 중대에서 음식재료인 A 레이션, B 레이션 등을 얻어다 차에 실어 자주 갖다 줬다.
처음엔 사양을 하더니 받아놓고는 열대과일을 들고 와서 나눠주고 서 중위한테는 특별히 망고와 용과 같은 좀 귀한 걸 가려 주곤 해서 정이 들었다. 이성 간이 아닌 오누이의 정이랄까 그 집 아버지가 전투에 일찍 사망해서 안 계시단다. 엄마 혼자 4남매를 키웠다고 집안 얘기를 듣기도 해 딱하기도 해서였고 군내 거주민들 사정 같은 것도 가끔 얘기해 줘 친해지기도 했다.
서 중위는 월남 도착 후 5개월 반 동안은 전투 중대 소대장을 했다. 그 당시엔 배 타고 일단 월남 도착하면 병과에 관계없이 소총부대로 가서 전투 경험을 갖게 했다. 4개월 16일 동안 작전에 참가하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 중대원들과 정이 들만하니까 헤어지게 된 것이다.
월남 실정을 몸에 익히고 나면 자신의 병과대로 차출이 되어 원래 병과 분야에서 사단이나 연대 내에서 근무하기도 하지만 보직이 변경된 채 1,2년을 다른 직책으로 기간을 채우고 귀국하기도 한다. 운이 없거나 탁월한 전투 능력이 보이면 그 중대에 말뚝이 되기도 하는데 서 중위는 4개월 만에 연대로 돌아와 민사과에 배치되어 대민 업무를 보게 되었다. 월남어 교육도 사단에서 3개월 마치고 군청에 정보장교로 자주 나가게 되면서 미군과 월남 군 요원들과 같이 근무를 한지는 또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대장 지시로 3대대에 민원이 발생해 사건 조사차 출장을 갔다가 오는 도로상에서 납치가 된 것이다. 좀 늦은 시각인데 군 짚차에 운전병과 둘이 타고 19번 도로를 거슬러 부대로 귀대 중 깔딱 고개 오르막 중턱쯤에서 난데없이 민간인 차림의 서너 명이 도로를 막고 도와 달라는 시늉을 해서 차를 세웠다.
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차에서 내리진 않고 상황 판단을 하는데 난데없이 숲속에서 대 여섯 명이 소총을 겨누며 나타나 총을 몇 발 쏘아대며 내리란다. 원래는 짚차에도 호위병 두 명이 좌우 경계를 하며 운행을 해야 하는데 가끔 다니던 길이라 방심을 한 거다. 운전병과 둘이는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이없어 하며 안 내릴 수 없었다. 서 중위 계급장을 보더니 인솔자인 듯 보이는 사내가 뭐라고 지시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 후 손을 묶고 차에 다시 타게 한 후 그들 중 한 명이 운전을 하고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작은 짚차에 7명이 탄 채 어디론가 도로를 이탈하여 한참 가더니 내리란다. 거기서부터는 우리 두 사람 눈을 천으로 가리게 한 후 또 한참을 걷게 한다. 한참 만에 어느 곳에 도착해 건물로 데려갔다.
그때까지 눈은 가리 운 채다. 이곳이 이 지역 VC들의 임시 근거지인 곳으로 알게 됐다. 하늘이 잘 안 보이는 울창한 정글 속에 나무와 갈대로 지은 듯한 전통가옥 건물이 서너 채로 그리 많은 병력이 주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중에 한곳으로 데려간다. 덩그러니 나무 침대와 궤짝 같은 게 하나인 숙소 같다.
두 사람을 같이 들어가게 한 후 엉성한 나무 침대에서 그날은 지새게 했다. 다음날 군복을 입은 나이 든 사람과 여군 장교인 듯한 사람이 들어온다.
"소속과 직책 이름을 대라?"
"백마부대 연대 민사과 중위 서 대규다."
"언제부터 전투에, 아니 이곳에 왔는가?"
"71년 3월 18일 날 캄란 베이에 내렸고 쭉 연대 민사과에 있다."
"월남 말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 배웠나?"
"잘 하는 건 아니고 사단 내 월남어 교육대에서 3개월 교육받았다."
"우리가 누구인 줄은 아는가?"
"모른다. 월맹 정규군인가?"
"그렇다. 월남 인민 해방군 사령부 직할 부대다. 난 이곳 지역 부대 부 사령관이다. 포로인 너희는 조만간 본부로 이송될 것이며 앞으로 많이 협조하면 살려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오래 구금되어 있다가 죽을 수도 있다. 잘 판단하고 처신하기 바란다. "
첫날은 이렇게 부사령관의 문초로 끝이 났고 다음 날부터는 여군 장교가 심문을 했다. 너희 군은 우리 양민과 군에 많은 피해와 손실을 안겨 왔다. 부대 규모와 병력을 물었고 계획된 작전 시기를 물었지만 아는 대로 적당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연대나 군단 규모 작전이 장소와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기밀사항이라 잘 알 수가 없었고 분야가 다른 대민 사업 쪽이라 이해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엔 이들도 이해를 했는지 그렇게 험하게 다루진 않았다. 그래도 신분이 장교라 아무리 신빙이라도 포로 몸 가치가 있는 모양인지 본부 명령에 따라 이송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서 중위의 운전병이자 당번병인 박 상병은 다른 방에서 비슷한 심문과 대우를 받은 것 같았다.
한낮의 태양이 화염방사기 불꽃처럼 뜨겁다. 저녁이면 달빛이 수풀 사이로 내려앉아 고향 생각에 멍해지고 앞으로 어떤 일이 두 사람에게 닥쳐올지 침울한 나날이 그냥 지나갔다.
이때쯤 지역 신문과 연대 및 사단에서 한국군 두 사람이 납치되어 포로가 됐다고, 큰 뉴스가 되고 있었다. 연대에선 즉각 구출 작전 및 협상이 기획되고 있고, 린호아 군청에서도 실종 지역 인근 부대 참모진들이 연대에 들어가 작전을 세우고 군청 연락 사무실은 목격자 및 탐문수사로 비상이 내려져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2, 3일이 더 지났는데도, 모든 걸 포기하고 어디로 끌려가려니 생각만 하고 있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리곤 여자 장교가 나타나 나를 다시 심문하려는지 단둘이 앉게 되었다. 이제 보니 그 여군은 복장도 단정하고 몸매도 좋고 좀 합리적인 데도 있어 보이는 사람같다.
포로면서도 남자라 그런지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게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군청 사무실 꼬딴과 얼굴 생김새도 비슷해 농담처럼 혹시 린호아성의 꼬딴과 형제는 아닌지 서 중위는 한번 물어본다.
"린호아 성 군청에 꼬딴이라고 있는데 혹시 아는지?" 물었더니 눈을 크게 뜨고 얼굴 색깔이 좀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모른다고 딱 잡아 땐다. 그 직원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서 중위는 직감을 발휘하여 꼬딴이 언니가 있다면서 자신을 소개해 준다고 했었다고 말을 하니 그냥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그런 얘기는 더 이상 않고 지금 이 지역이 한국군 월남 군이 합동작전으로 당신을 찾고 있으며 우리 사정으론 본부로 당신 둘을 보내야 하는데 교통 편과 호송 인원이 마땅치 않아 고심 중에 있다는 걸 얘기하곤 나가 버린다.
며칠 전에도 포로 심문을 받았다. 별로 영양가 없는 답변만 하고 있는 걸 아는지 큰 기대도 안 하는 것 같다.
"주로 하는 임무는?" "대민 사업과 민사 정보 관계 통역 일이다."
"너희 군은 왜 이곳에 와서 우리의 통일 임무를 방해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우린 단지 국가의 부름과 명령으로 이곳에 와서 전투를 할 뿐이다."
(7월1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3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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