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북핵 문제 서두르면 진다

판문점 3자회동은 역사적이지만
미국과 북한 반응은 의외로 신중
들떠서 ‘사실상 종전선언’ 이라며
먼저 샴페인 터뜨리는 것은 금물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역사적인, 극적인, 획기적인, 그 어떤 수식어도 과장이 아니다. 6월 30일의 판문점 3자 회동 말이다. 북한이 공개한 기록영상에서도 '력사적인'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사변적인'이란 낯선 단어도 등장한다. '트윗'이란 말 뜻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날린 작은 새의 지저귐이 불러온 깜짝 이벤트일 수도 있다. 혹은 오랫동안 기획한 행사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용 리얼리티 쇼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만남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다.

미북 정상의 판문점 만남은 싱가포르, 하노이 회담과 차원이 다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대결의 당사자들이, 전쟁의 흔적인 비무장지대에서 만난 사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미국 정상과 회담을 가진 사실. 모든 게 말 그대로 '사변적'이다. 6·25전쟁을 한때 '6·25사변'이라 불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전쟁과 맞먹는 정도의 역사적 장면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미국과 북한의 반응은 의외로 신중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답은 '노 러쉬'(No Rush)다. 서두를 것 없다, 서두르지 않겠다. 북한 관련 이슈마다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다. 실무협상을 지켜보자며 이번에도 '노 러쉬'를 되풀이한다. 제재를 계속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미국 의회와 언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쇼는 좋지만 비핵화에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북한도 생각 외로 차분하다. 북한의 동영상을 보면 김정은의 '력사적' 결단을 강조하려는 극적인 연출을 느낄 수 있다. 장중한 음악, 과장된 웅변조 해설 등은 북한 특유의 기법이지만 군사분계선을 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걸음을 느린 화면으로 만든 성의(?)까지 보였다. '판문점의 조미 최고 수뇌 상봉'은 "온 지구촌의 눈과 귀가 판문점으로 모이고" "격정과 흥분으로 뜨겁게 달구어졌으며" "세계를 커다란 충격과 격동으로 끓게 한" 행사였음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는 사실 또한 분명히 한다. "70년간의 적대 관계와 불신을 청산하려면" "피치 못할 난관과 곡절과 시련이" 예상되지만 두 수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헤쳐 나가자고 말한다. 겉으로는 한껏 흥분한 듯 보여도 속내는 신중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상당히 들떠 있다.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의 구체적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선 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 개념부터 천양지차다. 북한의 협상 실무자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판문점 회동은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가 당사자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우리는 빠지라고 노골적으로 언급한 북한 성명은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이 여전함을 보인 것일 뿐이다. 비핵화 협상 자체에 낄 수 없는 우리의 자세는 분명하다. 우리가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에서 말하듯 70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문 대통령 역시 비핵화가 오래 걸리는 일임을 언급한 바 있다. 정부 여당은 그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끈질긴 협상이 필요하며 우리 국민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상의 종전선언' 등 먼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정은 답방 등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북풍이라는 비판과 함께, 우리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일에 실패할 수 있다.

판문점 회동이 한바탕의 환상적인 쇼라 해도 좋다. 쇼도 그 나름의 효용이 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를 현실과 혼동하면 문제가 크다. 화려한 쇼가 끝나면 지루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주관적 희망으로 객관적 분석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보다 반 발만 앞서 나가라'는 말처럼 너무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70년 적대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 없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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