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향(錄香)',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고전음악 감상실이다. 1946년 향촌동에서 문을 열었는데,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예육회(藝育會)가 있다. 예육회는 아주 오래된 단체로, 여유를 가지고 앞을 내다보려는 사람들이 모여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교육하자는 뜻으로 만들었다. 그 이름은 예술의 '예'와 교육의 '육'을 따서 지었다. 녹향은 문화 예술 도시를 지향하는 대구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고인이 된 이창수의 공이 크다. 예육회의 총무를 맡고 있던 그가 회원들의 모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자신의 집 지하를 파서 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레코드를 가지고 해설을 곁들인 감상회를 열었고, 때로는 북성로에 있던 미국공보원에서 레코드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그동안 1,500회가 넘는 감상회를 가졌으며, 지금도 정례 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는 클래식 음반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창수가 가지고 있던 음반은 학생들의 교재가 되었다. 또한 녹향과 예육회 활동을 통해 음악계로 진출한 사람도 숱하다. 그리고 녹향은 가곡 '명태'의 산실이기도 한데, 그곳에서 양명문 시인이 노랫말을 썼고, 그 가사로 변훈이 곡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6․25전쟁으로 대구에서 피란살이를 하던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권태호 김원경 김경윤 김종환 김진균 변훈 양명문 양주동 유치환 윤장근 이기홍 이중섭 최정희 홍춘선 …, 다 꼽자면 지면이 부족하다.

그밖에 다른 감상실도 있었다. 1951년 '르네상스'가 향촌동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박용찬이 귀한 음반을 많이 가지고 피난을 내려와 감상실을 열었다. 시인 전봉건과 뜻을 모아 레코드를 걸고 해설하였는데, 처음 틀었던 곡이 '마태 수난곡'이었다. 그러자 외신기자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마태 수난곡'이 들린다며 토픽 뉴스로 해외에 타전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시절 단골로 드나들던 유명 인사로는 구상 권옥연 김동리 김종문 김생려 김중업 김환기 김희조 나운영 박훈산 신상옥 임원식 장민호 장만영 전봉래 최은희 홍성유 …. 또한 '하이마트', '빅토리아', '시보네', '심지' 같은 감상실도 중앙로 주변에 있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고전음악을 들었다. 감상실에 앉아서 피란살이의 울울한 심사를 달래기도, 원고를 쓰거나 시국강연회에 나가서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뒷날 우뚝한 음악가로 성장한 사람들도 없자 않다. 아무튼 그 시절 고전음악 감상실은 문화 예술인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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