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또는 속되게 하는 말'인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막말은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이제 누가 더 센말을 할 차례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다 보니 막말 1이 막말 2를 낳고, 막말 2가 또 막말 3을 낳는 '막말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 막말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정치 혐오 부추기는 막말=정치권의 막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상대를 향해 거친 언사를 퍼붓는다. 원색적인 비속어 사용은 기본이고 생소한 용어까지 동원해 상대방 깎아 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여야 정권 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막말을 했다. 1998년 당시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 공업용 재봉틀로 입을 박아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서도 막말은 이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개구리', '노가리', 심지어 '무뇌'라 부르기도 했다.
정권이 교체되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막말을 쏟아냈다. 당시 천정배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 원내대변인이던 홍익표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비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막말 대상은 사회적 약자로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12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는 발언으로 장애인 폄하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5월 11일 대구 집회에서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고 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빠', '달창'은 문재인 대통령지지자를 비하하는 비속어다. 한국당 김현아 의원도 지난 5월 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빗대 논란을 불렀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나 원내대표를 향해 "지금 좀 미친 것 같다"고 공격했다.
한선교 사무총장은 지난 5월 회의실 앞 바닥에 앉아있던 몇몇 기자들을 향해 "아주 걸레질을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역 출신 의원 막말 파문=정태옥 국회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 언론 매체에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인천으로 오기 때문에 실업률이나 가계 부채, 자살률 이런 것들이 꼴찌"라고 주장하면서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데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간다.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현 미추홀구)나 이런 쪽으로 간다"고 실언하며 이른바 '이부망천'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대구시 중구 한 의원은 지난해 12월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지원금을 놓고 구청장과 언쟁을 벌이면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젊어서부터 땀 흘려 돈을 안 벌고 쉽게 돈 번 분들이 2000만원 받고 난 다음에 재활해서 자활교육 받고 난 다음에 또 다시 성매매 안 한다는 그런 확신도 없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세월호 막말=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는 유가족 폄훼 발언도 나왔다. 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은 지난 4월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겨냥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회 쳐먹는다. 그들이 개인당 10억 보상금 받아 이걸로 이 나라 안전사고 대비용 기부를 했다는 얘기 못 들었다"고 막말을 쏟아냈다. 같은 당 정진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받은 메시지라며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고 적어 비난을 샀다.
◆노인·여성 폄하=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제17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04년 3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않고 집에서 쉬어도 된다"며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라고 말해 노인들로부터 격한 반발을 샀다. 유시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4년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한 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30,40대에 훌륭한 인격체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면서 "50대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아서 사람이 멍청해진다. 그러니 60대가 되면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해 분란을 낳았다.
◆다문화·전라도 비하 막말=정헌율 익산시장은 지난 5월11일 원광대에서 열린 다문화가족 운동회에서 "생물학적,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며 "똑똑하고 예쁜 애들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프랑스)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해 비난을 샀다.
'미스트롯'을 통해 명성을 얻고 있는 트로트 가수 홍자도 지난 7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전라도 혐오 발언을 해 비판을 받고 있다. 홍자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던 중 "(또 다른 '미스트롯' 출신 가수) 송가인이 경상도에 가서 울었다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무대에 올라오기 전에 전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뵈면 (머리에)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에 발톱이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여러분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너무 힘이 나고 감사하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지난달 25일 한 종편채널 방송에서는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용어를 자막으로 사용해 논란이 됐다.
출연자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제작진은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전라디언은 일베가 호남 지역인들을 비하하려고 만든 말이다. 포털 게시판에 나온 그 뜻을 찾아보면 '전라도인+인디언'을 합친 것으로,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인 '도'로 치부하지 않고 별도의 나라로 분류한다는 식이다. 또 인디언은 아메리칸 대륙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비하적 표현이기도 하다.
◆막말이 욕먹어도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몸값 상승'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인으로서 인지도를 높이고 이념이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의 지지를 결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막말에 환호하는 유튜브 문화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대중의 관심에 목마른 전·현직 정치인들은 기꺼이 대중이 원하는 막말을 하며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튜브 막말현상에 대해 "정치판에서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 '갑'"이라며 "센 발언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구독자를 늘려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방식 역시 '막말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인들의 발언에서 자극적인 부분만 빼내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자 정치인들이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막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정치권의 막말 논란에 대해 "민생 우선의 정치를 해야겠다고 하는 의지가 없고, 자신들의 지지층을 집결하겠다는 유혹에 빠질 때 막말 경쟁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여당이 야당에게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주고, 야당과 막말경쟁이 아닌 정책적인 사안에 대해 논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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