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아냐. 임마. 지금 막 작문에서 본 어떤 소년의 호소야. 호소가 아니라 참 희망이었던가. 빌어먹을! 그런 걸 다 희망이라고 부르다니. 소년은 「나의 희망」에서 뭐랬는지 알아? 어떡하든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큰 공장에 취직이 돼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는 게 새해의 가장 큰 소망이라는 거야.' 박완서의 소설 '오만과 몽상'의 주인공인 의대생 현이 야학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다 우연히 읽은 한 가난한 학생의 글이다.
이처럼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된 1977년 무렵, 의료 보험증이 있는 집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출범 시에는 5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와 부양가족만 적용 대상이었다. 이후 단계적 확대를 통해 1989년 7월 1일, 마침내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다.
30년 역사의 국민건강보험은 전 세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단일 보험 내에 모든 국민과 모든 의료기관이 포괄되어 있어 운영에 효율적이다. 아울러 능력대로 보험료를 내고 필요한 만큼 혜택을 받기에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사회연대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흠결도 적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아직도 OECD국가의 평균인 80%에 훨씬 못 미치는 60% 초반대의 덫에 갇혀 있다. 이처럼 낮은 보장률로 인해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너무 많다.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한데 경제적 이유로 병·의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다.
이러한 의료비에 대한 불안을 파고든 것이 바로 '민간 의료보험'이다. '태아보험'에서 '실버보험'까지 그 시장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민간의료보험의 비싼 보험료는 서민 가계에 부담이 된 지 오래고, 경제적 수준에 따른 '의료 이용의 불평등'까지 초래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을 무력화시킨 후 그 역할을 차지하려는 '의료 민영화'의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5년부터 암 환자에 대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되었다. 암 진단을 받으면 본인 부담금 중 5%만 내면 된다. 암 환자의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암 보험료 지출 역시 감소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민간의료보험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는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 천막병원을 열고 피난민을 치료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장기적으로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든다. 그리고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될 때까지 21년간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었다.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고, 조합원 서로가 돕고, 질병과 경제적 부담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든다.'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의 설립 목표다.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국민건강보험이 나아가야 할 길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힘내라, 서른 살 국민건강보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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