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찰이 촬영 허용 피의자 얼굴·실명 공개'…법원 "위법"

보험사기 피의자들, 국가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서 일부 승소 판결

경찰이 언론사 촬영을 허용해 형사사건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 등 신상이 공개된다면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강하영 판사는 A씨와 B씨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B씨에게 1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2012년 형제 사이인 A·B씨는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보험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기자단에 '교통사고 위장, 보험금 노린 형제 보험사기범 검거'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어 B씨가 서울 강동경찰서 조사실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언론이 촬영하도록 허용했다.

당시 형제는 B씨의 얼굴 등이 언론에 노출되자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경찰의 행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경찰이 B씨에 대한 조사과정의 촬영을 허용한 행위는 B씨의 인격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2016년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B씨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형이 확정됐다.

형제는 2017년 정부를 상대로 "강동서의 불법행위에 대해 A씨에게는 1천만원, B씨에게는 4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경찰이 보도자료 배포 등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B씨의 촬영을 허용한 것, B씨의 실명 등 인적사항을 공개한 것, 형제가 공모한 사실이 없음에도 공모한 것처럼 특정하고 피해액수와 건수를 부풀리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 피의자 소환절차 없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구금하는 등의 불법행위로 인격권과 초상권 등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현행법 및 경찰 직무규칙 등에 따르면 수사기관에서는 원칙적으로 공판 전에 사건 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

중요 범인을 검거했거나 국민 의혹 및 불안 해소, 유사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공개하도록 한다.

법원은 경찰이 이러한 직무규칙을 위반해 피의자를 언론에 노출한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B씨는 보험사기를 이유로 체포된 피의자에 불과해 신상에 관한 정보공개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담당 경찰관은 언론의 촬영 요청을 허용하지 않거나 허용하더라도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모자, 마스크 등을 씌우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조사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실명까지 나타나게 해 B씨의 초상권 및 인격권이 침해됐으므로 국가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에 대해서는 직접 촬영대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보도자료 배포로 인한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위법하다거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고, 체포영장 발부가 위법이라는 주장 역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구속 영장이 발부돼 경찰로서는 원고들의 범행에 대해 유죄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B씨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또 "보도자료 내용의 취지를 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난다 해도 허위사실 유포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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