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부품∙소재산업, 문제와 해법은 무엇인가

수십 년 걸리기도 하는 신소재 개발
당장은 일본을 이길 수가 없어 답답
대학 연구가 산업 발전 이어지도록
교육·연구개발 시스템부터 바꿔야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

필자가 쓴 6월 26일 자 매일신문 경제 칼럼에 이런 내용이 있다.

'1896년 프랑스 물리학자 기욤이 개발한 인바는 스마트폰과 OLED TV의 핵심소재이지만 우리는 제조기술이 없어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인데 일본이 인바를 수출하지 않으면 삼성과 LG가 힘들어진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소재 전쟁이다.'

기사가 나간 지 5일 뒤 일본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품목은 다르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 참고로 스마트폰과 OLED TV의 핵심 부품인 섀도우 마스크도 인바에 포토 리지스트를 입혀 노광시킨 뒤 선택적으로 에칭하여 만든다.

일본이 치졸한 경제 보복을 할 거라는 낌새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8초간의 짧고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그로부터 3일 뒤 한국에 가장 타격이 큰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가 단행됐다.

더 많은 부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가 더 문제다. NHK 방송은 규제 강화 대상을 공작기계와 탄소섬유로 확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17년 기준 18.2%,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50.3%에 불과하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3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배터리는 양극활물질, 음극활물질,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되는데 핵심 기술이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 수입 의존도가 큰 산업 분야의 수입액과 일본 수입비율(괄호 안 숫자)을 보면 반도체 제조장비 52억4천200만달러(34%), 집적회로 19억2천200만달러(12%), 정밀화학원료 19억달러(15%), 플라스틱 필름 16억3천400만달러(43%), 고장력 강판 12억6천200만달러(65%), 화학공업 제품 12억달러(31%)로 일본 수입 의존도는 12~65%에 이른다.

2018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9천709억달러로 1조6천194억달러인 우리보다 3배나 높고, 일본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만1천340달러로 3만600달러인 우리의 1.35배이다. 일본은 GDP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고 산업 기술은 미국, 독일과 함께 세계 최강이다.

19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일본의 미쯔비시 엔진과 변속기를 수입하여 포니 자동차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이 됐다. 1968년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포스코는 일본 철강 기술을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성장하였으나 지금은 세계 최고 철강기업이 됐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보다 일본이 기술 강국이다. 이번처럼 기술 전쟁에서 이기려면 시간과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일본산 부품·소재가 없으면 전 세계 전자산업이 멈춰 설 수도 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 세계 12위이지만, 아직 우리의 기술 수준으로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국산화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소재 개발에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NHK가 새로운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칭한 탄소섬유는 일본 도레이가 1970년대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항공기에 적용하는 데 약 40년이 걸렸다.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은 기술로 일본을 이길 수가 없으니 외교가 답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부품·소재 기술 개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15년 반성백서를 펴낸 서울공대 이건우 학장의 말이다. "서울공대 교수 대부분은 번트를 친 뒤 간신히 1루에 진출하는 수준이며, 만루홈런에 해당하는 탁월한 연구성과가 없다. 전체 교수 300여 명 중에 후하게 점수를 줘도 독보적인 교수는 10명이 안 된다. 공대가 자연현상을 관측하고 해석하는 자연대의 아류로 전락했다. 탁월한 공대는 실용적인 연구와 새로운 이론이 어우러지고 국가 산업에 이바지해야 하는 곳이다."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장을 지냈고 1998년 학교기업을 세워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박희재 서울대 교수는 "공대 교수들조차 산학협력엔 뒷전이고 논문에만 신경을 쓴다. 대학 연구가 산업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면 대응할 수 있는 부품·소재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시스템과 국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정우창 대구가톨릭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 KAIST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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