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용섭의 북한화첩기행]묘향산

권용섭 작
권용섭 작 '묘향산 산주폭포'

이번 화첩기행의 목적지는 묘향산이다.

묘향산에 가기위해 이른 시간에 평양 해방산 호텔을 나섰지만 평양시내는 출근차량들이 "빵빵"거리며 줄을 잇고 있었다. 한 일행이 감탄을 하며 물었다. "와! 북한에도 트래픽이 있네요?" 그랬다. 16년 전 방문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택시도 많이 보이고, 게다가 교통체증까지 있다니, 예전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북한의 고속도로 사정은 어떨까?

최근 김정은 위원장까지 북한의 도로사정에 불편을 실토하기도 했다는데, 북한의 고속도로를 달려 본다는 자체가 흥분되었다.

평양 시내를 빠져 나와 달리다 보니, 톨게이트나 요금소가 없어 언제 고속도로를 올렸는지도 모를 사이에 차는 평양-향산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는 140여 킬로이며 상하행 4차선 이었다.

여영난 작
여영난 작 '묘향산 폭포들'

아내와 나,그리고 두 명의 일행과 북한 안내원을 태운 우리 승합차량 외에는 지나가는 차들이 간간히 보일뿐 한가한 도로였다. 도로면에는 움푹 파진 홈도 있어 지그재그 운전도 한다. 고속도로 갓길에는 걷다가 차를 발견하고는 태워 달라며 손을 드는 주민들도 있다. 고즈넉한 주변의 시골 풍경은 시골 출신인 나에게는 낯설지 않아 정겨웠다.

안내원 동지는 향산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묘향산 별장을 자주 찾으셨는데 여름이면 절반은 이곳에서 지내셨습네다. 그런데 당시 도로 사정이 상당히 불편해 수령님을 위하여 이 고속도로를 만들게 되었지만 완공되기 1년전에 돌아가셔서 안타가움이 있습네다." 
안내원은 수령을 위해 인민들이 전력을 다해 일 한다는 사실을 서슴치 않고 이야기 할 뿐 아니라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순간 차창 밖에서 기이한 광경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도로공사 중 교량공사를 하는데 아스팔트 콜타르를 커다란 가마솥에 인부들이 직접 삽을 들고 끓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담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꺼내 찍기는 너무 늦었고 그런 주민상을 마구 찍는다는 것도 안내원에게 부담이 가는 행동이었다.

여영난 작
여영난 작 '묘향산 폭포'

중장비 하나 없이 공사를 하고 있는 기억의 잔상을 조용히 되짚으며 크로키 해 놓았다. 
그렇게 3시간을 달려 묘향산에 도착했다. 15층 정도 되는 삼각형 모양의 향산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은 주변 묘향산 경관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지어졌다. 호텔을 끼고 돌아 가는데 평양 근교와는 달리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 휴양지임을 직감케 했다.

나는 김일성의 별장이 있다기에 내심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평양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벽에 걸려 있던 풍경이 실제 눈 앞에 나타났다. 그 건물은 바로 '국제친선전람관'이다. 청기와집 여러 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권용섭 작
권용섭 작 '묘향산 국제 친선전람관'

기와집과 사찰 그리기를 즐겨하던 나를 상기하게 했다.전람관 입구에 들어서자 입이 떡 벌어졌다. 한쪽 문이 4톤이나 되는 거대한 문에, 문고리는 금으로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 큰 문을 아내에게 잡고 열어 보라며 흰 장갑을 주는데, 왠지 주눅들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문이었다.


관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절차와 경비는 삼엄했다. 카메라는 물론이고 핸드백 조차도 반입 금지. 나는 조심스럽게 화첩을 흔들며 "요것은 괜찮죠?"하며 물었다. 근무자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아내에게 사인을 보냈다.

"스케치북은 가지고 들어가도 된대" 우리부부는 특권이나 받은 것처럼 화첩에 내용물들을 채우기 시작 했다. 6층의 전람관을 산속으로 굴을 파서 지은 미로같은 건물 속을 따라 다녔다. 고급전문 전시장답게 빛과 습도는 자연적으로 조절된다고 하며,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처마끝마다 나비장식 풍경이 달랑거리며 맑은 소리가 산속으로 스며든다.

권용섭 작
권용섭 작 '묘향산 향산호텔'

비행기에서부터 세상의 온갖 진귀한 보물을 다 모아 둔 것 같았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온 선물들이다. 가끔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선물들도 보였다. 북한의 문자 그대로 옮기기도 조심스러운 문구들이 많았다. 전람관 여자 안내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충성 언어를 구사했다.


마지막으로 맨 아래 층에는 충격적인 광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너무나 리얼한 김일성, 김정일,이정숙 여사의 밀랍인형이다.
 다림질 된 깨끗한 옷이며 실물 크기와 피부의 사실감이, 정말 금방이라도 대화 할 것 같은 분위기는 만수대 창작사의 조각 실력을 가늠케했다.

전람관 밖 묘향산의 비경은 가히 기가 막힐 정도로 수려 했다.

계곡으로 내려갔다. 초겨울 묘향산계곡은 퇴색되어 가지만 바위틈에 나붓거리는 단풍들이 흐트려져 계곡은 한 층 더 아름다웠다. 눈이 시린 옥색의 계곡물이 흘러 지나가며 작고 큰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계곡의 바위들은 오랜 풍파에 달아 아무 곳에 앉아도 야외 쇼파같이 편했다.

아내 여영난씨가 묘향산을 화폭에 담고 있다.
아내 여영난씨가 묘향산을 화폭에 담고 있다.

아내와 나는 거침없이 묘향산을 화폭에 등기 이전을 했다. 하지만 천개의 폭포가 있다고 하니 어찌 모두 유람을 할까.

상원암, 산주폭포, 용연폭포, 인호대, 불영대, 만폭동, 비선폭포, 단군이 살았다는 단군사가 있을 만큼 이 무궁무진한 명소들을 언제 다 스케치를 할까? 
우리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다음에 같이 올 화우들의 이름이 머리속에 떠 올려본다. 지구촌 마지막 통제지역인 북한은 문명의 미개척지인 만큼 '청정지역'만의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어느 대학 큐레이터가 이제 세계에서 남은 미술시장으로 베트남과 북한을 지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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