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착한 고무신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1960년대, 대구와 같은 대도시에도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간 아이들 시선은 온통 운동화에 쏠렸지만 막상 아이의 발을 차지한 것은 열에 예닐곱이 검정 고무신이거나 조금 더 깔끔해 보이는 흰 고무신이었다. 여름철, 고무신을 벗어 들고 학교 복도에 발을 내디디면서 햇볕에 그을린 발등과 묘한 대조를 이루던 발가락을 물끄러미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결핍의 기억은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유년기의 맨발이 맞닥뜨렸던 따가운 햇볕과 땀으로 미끌거리던 발의 감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값싸고 질기며 간편했고, 때로는 반으로 접어 끼운 모래판의 장난감이 되기도 했던 고무신은 1960, 70년대라는 시대를 되짚어보는 기억의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삶의 소중한 한 대목이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고무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공장에서는 고무신을 만들어내고 수요가 있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고무신을 구경하기는 힘들다. 이따금 여행 중 찾는 사찰의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흰 고무신 정도가 전부다.

이런 고무신이 맨발의 아이들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는 보도다. 대구의 한 사회복지법인이 최근 고무신 1천여 켤레와 교육용품을 동티모르에 실어 보냈다는 뉴스다. 고무신만 덜렁 보낸 게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울긋불긋하게 장식한 고무신을 멀리 동남아 섬나라의 산골마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착한 고무신'이다.

이는 맨발로 2~4시간 험한 산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돕자는 캠페인의 결과다. 비록 한 켤레의 고무신에 불과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이 담겼다는 점에서 소중한 우호의 선물인 동시에 대구와 동티모르를 연결하고 정서적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접점 중 하나다.

고무신을 계기로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 초등학교를 짓고 교육개발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맨발로 커피콩을 줍는 아이들에게 고무신은 내일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간단하면서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내일을 위한 신발'이라는 뜻을 가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의 탐스(TOMS) 스토리와 착한 고무신은 좋은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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