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배 직원이 자신을 추월해 초고속 승진하면서 졸지에 후배 밑에 부하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A(52) 씨. 그는 요즘 회사 가는 일이 바늘방석이다. 부장이 된 후배가 "선배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기 부담스럽다"며 아무런 업무도 맡기지 않는 탓이다. A씨는 "온종일 멍하니 컴퓨터만 쳐다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월급만 축내는 선배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곧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유통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B(30) 씨. 무거운 생수통을 나르거나 짐을 옮기는 것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B씨는 "젊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도맡아 하다 보니 대체 내가 사무직 직원으로 채용된 것인지 현장 노동직으로 채용된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지금껏 '괴롭힘'으로 정의되지 않았던 수많은 행동들이 16일부터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A·B씨 사례와 같은 행동을 했다가는 회사 인사팀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등에 신고당할 수도 있다. 신고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피해자가 요청하는 근무지 변경과 유급 휴가 등을 제공하고, 가해자에게도 징계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이를 빌미로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알쏭달쏭 '직장 내 괴롭힘'… 핵심은?
일명 '직장 갑(甲)질 방지법'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당사자에게조차 애매했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포괄적 정의를 내렸다는 점이다.
그동안 형법이나 노동조합법으로 처벌할 수 있었던 폭행이나 모욕, 부당노동행위 등과 달리 조직문화를 활용해 따돌림·차별·강요 등 눈에 띄지 않는 괴롭힘을 가할 경우 대응할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때문에 사측이 의도적으로 특정 직원에게 업무를 맡기지 않고 무시하거나, 집단으로 따돌리는 등 사실상 사직을 종용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했다.
이번에 개정된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76조 2항에서는 ▷직장 내 지위·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한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시했다. 3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징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중 '업무상 적정범위' 부분이 핵심이다. 특정 행위가 업무상 필요한 것이 아니었거나, 업무상 필요했더라도 행위가 사회 통념상 적절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된다.
특히 업무와 관계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경우 대부분 괴롭힘으로 분류됐다. ▷음주나 흡연, 회식 참여를 강요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퇴사 또는 부서 이동을 강요하는 행위 ▷근무시간 외에 연락을 받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이다.
◆기성세대 반발, 기타 한계도…
민간단체 '직장갑질 119'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최근 벌인 설문조사 결과, 20대와 50대 이상 직장인들은 ▷회식·노래방 ▷휴일 체육대회·MT ▷장기자랑 ▷휴일 근무 등에서 '갑질 감수성'(괴롭힘 감수성)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공공기관 간부 직원 C(57) 씨는 "이제는 업무상 지시조차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봐야 할 판"이라며 "퇴근 후에 밥 먹자고 하는 것까지 '갑질', '괴롭힘'이라고 하니 답답함도 느낀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괴롭힘 금지법 매뉴얼을 보면 '괴롭힘'의 일부 규정과 정의가 애매모호해 오히려 직장 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기업 간부 D(54) 씨는 "정당한 지시, 저성과자 등 모호한 표현이 많다 보니 법 시행 초기 인사·업무에 대한 불만 표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다른 일각에서는 법 개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롭힘 신고와 조사, 처분까지 회사 자체에 맡기다보니 은폐되거나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노동 전문가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단순히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간 갈등이 아니라 조직문화의 부작용이며, 제도로 개선해야 할 문제로 인식한 점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라며, "개정안 도입을 계기로 민간에서는 피해 사례를 적극 공론화해야 하고, 기관은 이를 수집해 직장 내 독립 신고기구 설치 등 사례별 대응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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