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와 부산(경남)은 본디 경상도의 한 울타리였다. 1392년 조선이 들어서고 경계가 정해지고 그렇게 482년(1413~1895)을 같은 공간에서 부대꼈다. 그래선지 민족이 가장 힘들던 약 35년간의 일제강점기 즈음 역사에 길이 빛날 의기투합의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482년의 세월보다 35년의 짧은 시기 벌인 경상도 사람의 값진 활동이 지금껏 조명되는 까닭이다.
먼저, 부산이 구상하고 대구가 전국으로 불을 댕긴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다. 특히 일제에 맞서는 만큼 보안이 생명인 비밀결사 내 경상도 사람의 활동은 더욱 돋보인다. 1909년 대동청년단(서울), 1913년 대한광복단(경북 풍기),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대구), 1919년 의열단(중국)에 이르기까지 경상도 사람은 지휘자로서, 대원으로서 활약이 뚜렷했다.
경상도 사람은 나라 찾는 일이라면 사상과 이념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보였다. 이는 경상도의 진보성(손호철 서강대 교수)으로 나타났고, 광복 이후 해방 정국에서도 이런 높은 진보 지표는 이어졌다. 이 같은 유산은 뒷날 독재 정권에 맞서는 2·28 대구 학생민주화운동과 부산경남의 민주화 활동과도 맥이 닿는다. 한 울타리 경상도 사람의 의로운 발자취이다.
1895년 이후 한 울타리를 벗고 경북(대구)과 경남(부산)으로 나뉜 경상도는 이제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5개 시·도로 갈렸다. 분가에다 지방자치제로 경상도는 지금 어느 때보다 힘든 날들이다. 부산의 지도자가 앞서고 이웃 울산과 경남이 가세, 5개 시·도지사의 합의를 무시하고 국가 정책을 뒤집고, 반대하는 국토교통부까지 압박해 항복을 받아내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의 막무가내 재추진 탓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전국 시·도당 위원장들이 지난 9일 모였을 때 대구경북 시·도당 위원장들이 어려운 지역 사정을 꺼내며 부울경의 행동 자제를 호소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제라도 부울경은 자신들 이익만 앞세우지 말고 큰 틀에서 경상도는 물론, 나라 남부지역을 고루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야 한다. 본디 울타리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 그랬던 흔적만이라도 되새기면 해법은 그리 멀리 있지만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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