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군(軍)에 대한 단상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 경험이 있다. 군 복무는 전체 인생에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때 습득한 습관·버릇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필자는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채 절반도 먹지 않았는데, 벌써 숟가락을 식탁에 놓는 경우가 많다. 훈련소 시절 빠른 시간 내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더는 못 먹게 했기에 그때의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다.

또 다른 습관은 집사람이 깨울 때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면서 눈을 뜬다. 보초 교대 때나 기상 시간에 맞춰 후다닥 일어나는 습관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 생활 속 긴장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고칠 수 없는 습관이 됐다.

군대에서 얻은 지울수 없는 흔적이 몸에도 남아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바로 무좀이다. 당시에는 소대원 중 막내가 양말을 공동 관리했다. 피곤하고 잠 부족한 막내가 양말을 제대로 빨 리 없으니 불결하고 비위생적이었다. 큰 대야에 양말 수십 켤레를 넣고 세제를 풀어 대충 흔들고 털어 끝내는 식이었다. 소대원 전체가 무좀을 달고 살았고, 제대 후에도 한참을 고생했다.

당시 군대는 전체적으로 폭력적·강압적·비이성적이었지만, 현재 군대와 차별적인 것은 상급자의 자세였다. '고참 중에 고문관(꼴통 병사)이 없다'는 말이 있듯, 하급자를 부리고 갈구려면 상급자가 모범을 보여야 했다. 평소에는 으스대고 탐욕스러운 상급자였지만,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 해결하고 책임지는 분위기였다. 군대 특유의 계급 문화, 체면 문화는 상급자의 솔선수범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옛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요즘 군 지휘부의 책임 회피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북한 목선 사건에는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이 사건 은폐에 책임이 있으면서 예하 부대만 처벌했고 해군 2함대는 책임 추궁이 두려워 사병을 허위 자수시켰다. 지휘자가 책임지지 않는 군대는 오합지졸이다. '나는 양 한 마리가 지휘하는 사자 백 마리의 군대보다 사자 한 마리가 지휘하는 양 백 마리의 군대를 더 두려워 한다.'(탈레랑 페리고르) 현재 군 지휘부에 국가 안보를 맡겨두고 안심할 수 있는 국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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