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오늘은 어느 집으로 가지?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지난주부터 경북지역에 있는 초‧중등학교를 방문하고 있다. 필자가 이렇게 방문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학교 현장에서 다문화 학생들을 위해 어떠한 진로 및 진학지도를 하고 있는지 설명도 듣고 개선 방향에 대해 자문도 받기 위함이다. 그런데 유독 한 중학교에서 상담교사와 나누었던 대화는 한 주가 지났는데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오늘은 어느 집으로 가지?"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다문화 학생이 교문을 나서면서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 고민이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을 했으며, 지금은 부모 모두 각각 재혼을 한 상태이다. 따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빠도 엄마도 이 학생을 반기지 않는다. 어느 쪽도 양육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 학생은 며칠씩 양쪽 집을 왕래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 사이, 학생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우울감이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다.

이 중학교에는 15명의 다문화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데, 대부분 편모나 편부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결손가정의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이 부족하여 심각한 정서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특히 자해나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학생도 절반가량 되었다. 현재 이들 중 한 학생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상담교사와 면담을 한 후, 몇 명의 다문화 학생들과 직접 인터뷰를 실시해 보았다. 가장 먼저 인터뷰에 응한 학생 역시 정서적인 장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 생활에 대한 의욕도 거의 없어 보였다. "우리 학생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모르겠는데요." "좋아하는 과목이나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나요?" "없어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모두 부정적으로 답하면서 간혹 고개를 숙인 채 응답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인터뷰를 끝내고 교문을 나서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먹먹함과 안타까움이 계속해서 솟아났다.

물론 모든 학교의 다문화 학생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학생들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가정적인 문제, 개인적인 문제가 한 학생의 삶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진로나 진학교육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교교육은 그것이 무엇이든 가정교육과 연계될 때 그 효과가 훨씬 큰 법이다.

학교를 방문하기 전,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사전 설문에 이런 문항이 있었다. "현재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진로‧진학지도가 여러분 가정의 부모님들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적어도 이 중학교의 다문화 학생들에게 이러한 질문은 너무나 무의미하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교육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정서적 불안감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과연 다문화 학생들에게 진로나 진학 문제가 중요한 일일까. 이들의 감정과 정서적인 면을 살피는 일과 가정 형편을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현재 다문화 학생들의 상당수는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하지만 이들 학생들은 해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될 것이며, 또한 사춘기를 겪는 학생 수도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다문화 학생들이 겪고 있는 정서적‧심리적인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다문화가정의 폭력과 인권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문화 학생들의 양육과 교육 지원 문제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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