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1급, 고혈압, 당뇨, 심부전증, 음낭수종, 고지혈증, 통풍, 고칼륨혈증, 진성 적혈구증가증, 골수 섬유증…. 경북 안동에서 만난 심창진(50) 씨가 가진 장애 혹은 질환들이다. 하나도 힘든 병을 여러 개를 동시에 앓고 있는 그에게는 더 무서운 현실이 철저히 혼자라는 점이다.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지만 비용마련은 꿈도 꿀 수 없다. 심 씨는 "열심히 살아보려 했는데 왜 이렇게 아파야만 하는지, 왜 혼자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얻어, 혈액암으로 희망 잃어
심 씨는 지난 1992년 빗길운전 도중 화물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수개월간 의식불명상태에 빠졌다. 그는 당시 경북 영주와 대구, 서울 등을 오가며 수차례 수술을 거듭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대신 심장병과 함께 근육 강직으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되는 장애를 갖고 살게 됐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얻은 장애를 감당하기에 현실은 너무 벅찼다. 군 복무를 갓 마치고 꿈에 부풀어 있던 심 씨는 사고 후 수년간 집에서 은둔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치료비로 집안이 엉망이 된데 대한 죄책감과 장애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 통풍, 신장, 간 질환도 앓고 있었던 심 씨는 지난 2014년 1월 진성 적혈구증가증 판정을 받았다. 이 병은 골수가 과도한 적혈구를 생성하는 질환으로 혈액이 진해진 탓에 피부 발진, 통풍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2년 전부터 혈액 속 칼륨 수치가 높아지는 고칼륨혈증까지 앓으면서 극심한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적극적인 식이요법이 필요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고 힘이 없는 그는 하루 한 번 라면으로 끼니를 떼울 뿐이다.
◆ 등 돌린 가족에 철저히 혼자, 자녀 생각 절실
심 씨는 진성 적혈구증가증 진단 이후 안동에서 서울을 오가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골수조직 섬유가 과잉발육돼 피를 만드는 기능이 줄어드는 골수 섬유증도 앓으면서 병세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병원에서는 더는 골수이식을 미루면 사망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재차 알려왔지만 현재 그에게는 골수를 이식해줄 가족이 없는 상황이다. 심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의료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골수 이식에는 최소 1천만원이 필요하다. 당장 가족과 인연이 끊기고 혼자 살아가는 그가 마련하기엔 너무 벅찬 금액이다.
아내와는 지난 2016년 합의 이혼 후 자녀까지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는 이혼 전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개인병원 구급차 운전, 과일장사 등을 통해 가정을 지켜왔다. 가족들이 '장애인 남편·아빠'소리를 듣게 하기 싫어 이웃이 보는 앞에서는 지팡이도 짚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2년간 혈액암 발병 사실을 숨겨오다 증세가 악화되며 어쩔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자 부인은 "알아서 하라"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심 씨는 "그 때 내가 더 이상 붙잡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내가 양육권을 가져가고 싶어 해 일부러 가정파탄의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꾸미고, 고등학생이었던 딸과 아들에게도 모진 말을 쏟아냈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녀들에게 했던 행동을 후회한다고 했다. 심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싶은 순간도 있지만 자식들 생각에 그럴수가 없었다" 며 "병을 고쳐 언젠가는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오해를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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