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대상 "린호아의 그믐달"③]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너희는 그럼 미국의 용병으로 온 것이냐?"

"그건 아니다. 우리가 받는 월급은 병사 50달러 내외이고 장교인 내가 중위로 150 달러 정도 받는다. 이것이 용병의 대가라면 너무 싸게 팔려온 거 아닌가."

"그건 너희 국가에서 더 돈을 받고 실제론 40%만 주는 걸로 들었다. 호주 군대는 미군과 같은 300달러 정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다."

"상관없다 따로 더 받는 건 우리도 가난한 나라니까 정부가 따로 챙겨 좋은 곳에, 경제개발이나 우리 국방에 쓸지 모르겠다."

"너 같은 애국자가 이 나라엔 별로 없는 게 유감이다. 남 베트남 정부 얘기다. 허울 좋은 민주공화국인지 미국의 원조 덕인지 오래전부터 남쪽은 썩었다. 정부 고위직이나 하위 공무원까지 모두 부정을 일삼고 부패 비리에 혈안이다. 무정부 같은 체제에 도둑질이 만연되어 있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너희 한국군은 이 나라 역사를 아는가?"

"어느 정도는 교육을 받았다."

"지금 우리 북쪽 월맹은 체제가 다른 공산권이지만 이 나라 역사를 비춰 볼 때 오랜 시간 큰 나라 중국의 지배를 1920년까지 받았다. 그 당시는 중국이 청나라였고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이름도 중국 본토의 월나라 남쪽 지역이라는 호칭으로 월남이라고 불렸다.

역사와 전통이 그리고 문화와 의식이 거의 중국화 되어었다. 지금도 그 문화와 풍습이 그리고 글자까지 많이 남아 있다. 그 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태평양전쟁 시엔 일본의 군화발이 전 국토를 짓밟아 놓았다.

긴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는 프랑스가 다시 이 나라를 교대로 차지하고 지배해서 그때부터 지루한 독립전쟁, 내전으로 전 국토는 빈곤과 피로 물들었다. 계속 식민지로 만들어 모든 이권을 가지며 갈취해가기 바쁜 그런 역사 속에 우리 민족은 또 그들에게 시달리며 핍박과 고난 속에 살았다.

이어서 중국 공산당의 물결이 이 나라에도 새롭게 들어오게 되면서, 그 이념을 부르짖고 의식을 차리자고 호찌민 주석이 투사로 나섰다. 그러면서 이 땅에 공산당이 결성되고 혁명적인 거국 독립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거의 프랑스를 몰아낼 때쯤 파리 평화 회담이 열리고 큰 나라들의 농간으로 신은 우리편이 아니었는지 이번엔 휴전선이 남북으로 갈라졌다.

그러면서 이 땅에 무슨 자원이 많이 있어서인지 놓치기 싫은 어여쁜 애첩이라도 있다는 건지 다시 미국이 개입해 북쪽은 멀리 한 채 남쪽 정부를 도웁네 하며 간섭을 하면서 지금의 이 지루한 싸움이 있게 된 것을 당신들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이 나라의 완전통일과 독립을 원한다. 그동안 우린 너무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 이해가 없는 이 나라에 와서 남쪽을 돕고 미국을 도와 싸우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꼬딴의 언니 꾸엉판이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한 말이었다.

이런 소리를 서 중위는 비록 적군이지만 이 나라 본토인으로부터 들으니 상황이 달라서인지 그 말이 맞는 말 같이도 들린다. 이 나라가 우리 한반도 역사와 비슷한 면도 있는 것을 느끼며 동병상련의 마음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서 중위는 작전에 출정해 적군이 보이면 무조건 죽이고 무기를 회수하고 전과만 올리면 최선을 다하는 군대이고 또 개인적으로 자신만 살아서 돌아가면 모든 게 선이고 영광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전에도 가끔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 있고 이데올로기는 또 무엇이며 이 전쟁의 명분은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회의도 들곤 했었다. 모든 전쟁이 국가적 대의를 위해 병사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되고 의무이고 명령이라 끌려가 싸우다 죽는 것이 무슨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는지 묻게도 된다.

서 중위는 국가의 부름으로 군인이 되어 본분인 명령을 따르고 충성을 하는 것이지만 이 월남이라는 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이 내 나라 내 형제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하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남의 나라에 와서 전우들이 하나 둘 죽는 걸 보면서 과연 이것이 의무이고 숙명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인생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정말 젊음을 다한다는 것은 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곳 인민의 숙원이자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는 그들을 죽이고 작전을 방해하는 행위도 우리가 정말 잘 하는 짓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비록 그들의 체제가 공산권이라고 해도 우리가 여기 와서 우리 체제와 반한다고 명령이라고 무조건 죽이고 때려부수고 해서는 과연 옳은 일인지 점점 회의가 들었다.

좁은 나무 침대 물통 하나가 전부인 움막에서 서 중위는 언제 이송이 될지 자신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 답답한 시간만 가고 있었다. 어느덧 2주가 지나고 있다. 또 한 번의 포로 심문이 있던 그 다음날 그 장교 이름이 꾸엉판인데 조용히 서 중위를 불러 부대장은 모르는 자기 생각이니 이곳을 탈출해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거다.

자기들 사정이 좋지를 않아 그대로 풀어 주는 건 문책이 있을 것 같고 허술한 경비를 만들어 줄 테니 탈출해 돌아가서 부대 귀대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다. 깜짝 놀랄만한 제안에 서 중위는 꾸엉판의 손을 얼떨결에 잡으니 얼른 빼면서 오늘 저녁에 감행하란다.

아마 경비병이 총은 쏠 것이다. 크게 막지는 않을 것이며 여기 지도도 줄 테니 30분 가면 큰 도로 19번 도로가 나온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잘 돌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다. 이 무슨 말인가? 풀어주겠다니 얼떨떨해진다. 한밤중 거의 자정 무렵 꾸엉판이 다시 와서 이제 가야 된다고 후문 쪽을 가리키며 일어나란다.

운전병도 곧 나올 것이라며, 그리곤 꼬딴이 자기 친동생이 맞는다고 잘 가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그동안 자기 여동생으로부터 남쪽의 정보를 많이 습득하며 지낸 것도 같다. 꼬딴이 서 중위에 대해 살려주라도 했는지 어떤 얘기라도 있었는지는 추측해 보지만 잘 모를 일이고 속단할 수 없었다.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 밀림이 그나마 은폐가 되어 무사할 수 있을지 염려도 됐지만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박 상병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 중위와 합류하면서 이제 탈출하는 거라고 귀띔을 하며 뛰기 시작할 때 어디서 웅성거리며 경비병인 듯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멈추지 말고 그대로 뛰라는 꾸엉판의 지시를 생각하며 죽기 살기로 뛰는데 뒤에서 고함소리 소총 소리가 따다 당 탕탕 쏴 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뛰었는데 몸에 총알이 박히는 것 같았다. 박상병도 몇 발 맞는 것 같다. 뛰다가 쓰러진다. 박 상병! 일어나! 악을 썼지만 못 일어나겠단다.

얼마 뒤따라오는 인기척은 없어 보여 박 상병 몸을 들쳐 없고 걸어 보려고 들쳐 안으니 그대로 축 늘어져 무겁기 짝이 없다. 엎드려 통곡하려는데 자신의 몸도 피가 엉기고 흐르는 것이 보인다. 거의 기다시피 도로를 나오니 멀리서 자동차 불빛인 듯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인다. 손을 흔들고 쓰러졌고 깨어보니 이동 병원이었다.

병실에서 누워만 있으니 소총중대 일이 엊그제 같이 또 떠 오른다. 탈출 때의 악몽은 거의 매일 겪기도 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치열한 전투를 하다 부대 내의 소대장 한 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소대장 교체가 이번에는 내 차례라고 학수고대하던 소대장들은 "야 이 새끼 죽긴 왜 죽냐?"하고 비통해 하며 원망도 섞였었다.

물론 전우의 죽음도 애석했지만 자신의 소대장 자리를 교체하기 위해 한국에서 오고 있는 소대장 요원이 우선 교체 순번이 된 자기보다는 결번된 소대에 먼저 배치가 되어야 했다. 때문에 소대장을 면할 기회를 한 번 놓치고 나면 전투를 한 번씩 더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7월23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4회가 게재됩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