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민 울리는 지역주택조합 주의보] 땅 한평 없이도 '저렴한 분양가' 유혹, 숨겨진 추가분담금에 울상

'착한 분양가' 믿고 가입했다 쏟아지는 추가 분담금에 일반 분양자보다 비싸게 살 수도
조합원 모집에만 급급해 무리한 모집·홍보… 조합장·업무대행사 비리 발생 가능성도 있어

무주택 서민의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지역주택조합이 무리한 사업 추진과 추가분담금 요구 등으로 수많은 분쟁거리를 낳고 있다. 대구 한 지역주택조합 사업 대상지 일대의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이달 4일 대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이 시공 예정사와 업무대행사 등을 규탄하며 대구 동부경찰서 앞에서 연 집회 모습. 김근우 기자

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다. 해당 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85㎡ 이하의 소규모 주택 1채만 가진 사람들이 직접 조합을 구성, 토지를 매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공동주택(아파트)을 짓는 방식이다. 조합원들은 청약경쟁 없이도 시세보다 싼 값에 집을 분양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사업이 무사히 진행되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는 것. 조합이 곧 시행사이기 때문에 사업 과정에서 생기는 분쟁거리와 추가 비용도 모두 조합원들이 떠안아야 한다.

투자 여력이 부족한 조합원들은 계속되는 '추가 분담금' 청구서에 결국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법정 다툼에 돌입하는 사례도 잦다. 이런 실정을 알지 못한 채 "싼 가격에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섣불리 조합에 뛰어든 서민들의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착한 분양가'에 숨겨진 '추가 분담금'

2014년 대구 수성구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A(49) 씨는 지난 5년 동안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잘 되는 듯했던 사업이 토지 매입비 문제로 미끄러지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사업 대상지 땅값이 갈수록 오르면서 조합원들은 수억원대의 추가 분담금을 요구받았고, A씨를 포함해 부담할 능력이 없거나 거부한 이들은 무더기로 조합에서 제명됐다.

A씨는 아직 조합에 낸 1억5천만원가량의 분담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조합 측이 1억여원의 사업 진행 비용을 제외한 금액과 이자를 준공 및 입주 이후 정산해주겠다고 통보했지만, 이 경우 5년이 넘게 걸려 사실상 돌려받는 의미가 없어진다"며 "반환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을 진행 중"이라고 털어놨다.

지역주택조합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성은 조합원들의 투자금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손실과 이익은 모두 조합원들의 몫이다.

가장 위험한 단계는 토지 매입이다. 현행법상 토지 80%만 매입하면 조합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아파트를 지을 땅을 모두 확보하지 못해도 조합은 만들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 2017년 6월 주택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지 않고도 조합원 모집을 시작할 수 있어 문자 그대로 '땅 한 평' 없이도 홍보관을 차리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조합을 설립한 뒤 땅값이 급등하거나, 일부 지주가 땅을 팔지 않아 사업이 늦어질 경우 추가 분담금 부담이 상당하다.

이달 4일 대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이 시공 예정사와 업무대행사 등을 규탄하며 대구 동부경찰서 앞에서 연 집회 모습. 김근우 기자

대구 한 지역주택조합원 B(68) 씨는 "계약금 등 4천만원 정도를 낸 상태에서 토지 매입이 어렵다며 거액의 추가 분담금을 요구받았다"며 "내지 못하면 제명당하고 투자금을 떼일 수 있다는 생각에 대출까지 끌어다 냈지만, 정신적 고충과 이자 부담이 심했다"고 하소연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일단 착공한 현장이라도 땅을 파다가 암반이 발견되는 등 공사비가 크게 오르면 이를 전부 조합원이 추가로 분담해야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일반 분양자보다도 집을 비싸게 사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조합원 모집에만 급급… 무작정 돈 넣는 피해자 '양산'

조합원을 최대한 빨리, 많이 모으는 데 사업의 성패가 걸려 있는 탓에 무리하게 조합원을 모집하다 발생하는 폐단도 크다. 사업 성공률이 낮지만, 이런 위험성을 가린 채 "빨리 가입해야 더 싼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당해 무작정 돈부터 넣고 보는 피해자가 양산되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조합을 대신해 토지 매입과 개발 등 제반 사항을 처리하는 업무대행사가 무리하게 조합원을 모집하는 사례가 잦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구 한 부동산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부지에 '초고층을 올리겠다'고 속이거나, 홍보관을 실제 설계보다 넓게 만들고는 '시원하게 잘 나왔다'는 식으로 가입을 유도하기도 한다"며 "조합원 수에 따라 대행비를 받고, 사업이 흐지부지되더라도 큰 손해를 입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무리한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대행사나 조합장은 관련 하청업체를 선정하면서 노골적인 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지난 1월 창원에서는 업무대행사와 전 조합장, 토지매입 용역업체 대표 등 모두 10명이 240억원의 불법 수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고, 조합원들은 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피해 막으려면 소비자가 꼼꼼히 따져야

정부는 줄을 잇는 피해를 막고자 지난 2017년 6월 주택법 개정안을 통해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칼을 댔다. 조합원을 모집하기 전에 해당 시·군·구청에 신고하도록 했고, 이때 사업계획과 토지확보 여부, 도시계획 등을 사전 검토하도록 했다. 또 업무대행사의 허위·과장 홍보를 금지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부여했다. 조합원이 탈퇴할 때는 규약에 따라 비용 환급 청구권을 갖도록 명시했다.

대부분의 조합들은 원활하게 절차대로 진행되지만, 일부 조합들이 사업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책에도 피해가 줄어들지 않자 지난 3월 15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 모집 요건과 사업관리 등을 규제하는 추가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막으려면 결국 소비자들이 꼼꼼히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장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 건설사는 '시공예정사'로, 조합이 사업 진행 조건을 만족할 때까지는 관여하지 않는다. 번듯한 건설회사의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실제로 업무를 추진하는 업무대행사의 역량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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