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첩첩산중의 절경, 중국 귀주성(貴州省)

포의족, 묘족 등 소수민족의 보금자리 귀주성
만봉림, 마령하대협곡... 카르스트 지형 박물관
황과수의 핵심 두파당폭포, 천성교에는 관람객 북적
숨어지낸 이들의 마을, 어부로고진도 숨은 볼거리

틈새란 틈새로는 모두 물이 쏟아져 나온다. 마령하대협곡 좁은 틈으로 쏟아지는 폭포군이 장관이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틈새란 틈새로는 모두 물이 쏟아져 나온다. 마령하대협곡 좁은 틈으로 쏟아지는 폭포군이 장관이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우리 동네 말로 '꼴짜꼴짜(골짜기 중에서도 골짜기)'다. 첩첩산중에 빗댄 첩첩곡중(疊疊谷中)이란 조어가 어색하지 않다. 중국 귀주성(貴州省)이다. 평야는 책으로만 배운다. 근방 400km 이내에 그런 건 없다.

위로는 중경, 왼쪽으로는 운남성 곤명과 붙어있다. 베트남과 가깝다. 위도가 낮은 산악지대다. 습도가 80% 이상이다. 꿉꿉하다. 옛말이지만 '버려진 땅'이란 악평도 수긍할 만큼이다. 침략자의 발길이 뜸했다. 숨어 지내려는 이들이 눌러앉기 좋을 조건이었다.

누군가에겐 행복과 평화의 땅이 됐다. 소수민족의 보금자리다. 다민족 지역이다. 귀주성 인구 3천400만 명 중 3분의 1이 소수민족이다. 포의(布依)족, 묘(苗)족이 많이 산다. 15개 민족이 더 산다.

촉망받는 관광지다. 귀주성에 발 딛기 직전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본다. 소름이 돋는다. 예각, 둔각 봉우리로 단순 구분하면 실례다. 동글동글한 봉우리부터 삼각, 사각, 조금 무리해서 말하자면 오각 봉우리까지 있다. 물이 많아 대협곡도 거든다. 카르스트 지형 박물관, 귀주성이다.

◆마령하대협곡(馬嶺河大峽谷)

관람객에게 공개된 마령하대협곡 2km 남짓에 10개가 넘는 폭포가 줄지어 있다. 어느 쪽으로 카메라를 향하든 온몸이 다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관람객에게 공개된 마령하대협곡 2km 남짓에 10개가 넘는 폭포가 줄지어 있다. 어느 쪽으로 카메라를 향하든 온몸이 다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귀주성 산악지대가 대개 그렇다.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 지각 변동으로 솟아올랐다. 이 지역의 내로라하는 절경은 '국가급 풍경 명승구'다. 경치의 질에 따라 A를 최대 5개까지 받는데 모두 최상위다. 마령하대협곡이 대표지다. 석회질 지형이다. 물이 많은 곳에선 종유석이 자란다. 구멍이란 구멍에선 죄다 물이 쏟아져 나온다.

절벽 사이의 협곡이다. 하늘에서 보면 땅이 깊은 자상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찢겨 파인 모습이다. 그 안으로 마르지 않는 물이 세차게 흐른다.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는 별칭도 있다.

걸은 만큼 보이는 절경이다. 150~200m 높이의 폭포가 줄줄이 이어진다. '만마분등(萬馬奔騰)'이라는 폭포가 가장 크다. 수많은 말이 뛰어 오를 듯한 기세로 떨어져 내린다는 의미다. 다소 과한 표현이지만 거슬리지 않는다.

마령하대협곡의 거친 물살이 하류로 흘러가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에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교량의 흔적이 남아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마령하대협곡의 거친 물살이 하류로 흘러가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에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교량의 흔적이 남아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협곡의 총 길이는 75km다. 유량에 따라 60개 안팎의 폭포가 절경을 자랑한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곳은 길이 2km 정도다.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 걷는다. 10곳 남짓한 폭포를 만난다. 카메라를 가만히 놔둘 수 없다. 반바지, 샌들, 우의는 필수다. 안 젖을 방도가 없다.

◆황과수(黃菓樹)

귀주성 안순(安順)시에서 40km 넘게 들어가야 만나는 '황과수'다. 원래 '백하수(百河水)'라는 지명을 갖고 있던 곳이다. 100개의 물길이라는 지명에 걸맞다. 폭포가 한둘이 아니다. 양자강의 상류다. '황과수'라는 지명은 노란색 과실수를 많이 심어서다. 주민 소득 창출용으로 정부가 식재를 추진했다고 한다.

폭포군 중 주연급을 꼽으라면 단연 '황과수 대폭포'다. 아시아 최대 규모다. 중국 측에선 세계 4대 폭포라고 강조한다. '빅4'로 끼우기엔 나머지 3곳이 압도적이다. 빅토리아, 나이아가라, 이과수 폭포다. 대륙별 안배설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황과수 상류에서 맨 처음 만나는 건 두파당폭포다. '가파르고 비탈진 언덕'이라는 뜻이다. 높이는 21m다. 낙차에서 터지는 힘은 약하나 폭이 105m로 가장 넓다.

이곳은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며 유명세를 치른다. 1984년 작품 서유기다. 오가며 보이는 쓰레기통에 영화 장면이 붙어있다. 여러 버전의 서유기가 제작됐지만 1984년작이 공전의 히트작이다. 40년 가까이 '황과수=서유기'라는 공식을 쓴다. 20년 넘게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끌고 오는 경북 영덕, 영화 러브레터의 '오겡끼데스까'부터 뱉고 보는 일본 오타루는 양반이다.

황과수 대폭포에 전날 내린 폭우로 흙탕물이 쏟아지고 있다. 평상시 물빛이 고운 폭포로 더 알려져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황과수 대폭포에 전날 내린 폭우로 흙탕물이 쏟아지고 있다. 평상시 물빛이 고운 폭포로 더 알려져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천성교(天星橋) 일대도 진풍경이다. 수상석림(水上石林), 물 위의 바위 숲이라 불린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65일을 징검다리 위에 박아뒀다. 탄생일마다 유명인의 이름을 새겼다.

제각기 생일에 서서 사진 찍는 게 자연스럽다. 셀카숲이다. 니나노도 하루 이틀이고, 셀카도 한둘이어야 용인 가능하다. 사람 다니는 길이 막힌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관람객들이 주춤거리는 건 당연지사. 생리적 욕구를 참지 못한 이들은 새치기 신공을 부린다. 참을 인(忍)자 3번은 적어야 한다. 중국 인구의 거대함을 피부로 느낀다.

비경도 비경이지만 중국인들이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황과수는 중국 초등학교 1학년 어문 교과서에 실린 곳이다. 천안문, 계림과 함께 '우리나라 구석구석' 정도로 소개된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가 되면 반짝 특수를 누린다지만 교과서에 실리면 평생의 업(業)처럼 각인된다.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교과서에 등장해 숙명처럼 '내 조국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중국인 대부분이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으로 여긴다고 한다.

◆만봉림(万峰林)

수많은 봉우리의 숲인 만봉림과 납회마을을 배경으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수많은 봉우리의 숲인 만봉림과 납회마을을 배경으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귀주성 최남단으로 향한다. 만봉림이다. 관광지는 있었으되 길이 없어 보러 오지 못했다는 곳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악조건이라 부를 수 없는 시대다. 맑은 공기와 천혜의 자연환경은 오지와 동의어다.

발상의 전환이다. 지형을 활용해 관광지로 만들고 국제스포츠대회를 연다. 산악길을 경주로로 삼는다. 귀주성 옥병(玉屛)과 복천(福泉) 등에서는 매년 국제산악사이클리그전을 연다. 이제부턴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이다.

만봉림의 마을 '납회(納灰)'에 이른다. 마을 초입에 명나라 지질학자 서하객(徐霞客)의 동상이 있다. 본명은 '서굉조(徐宏祖)'다. 22살 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녔다 한다. 철저히 기록으로 남겼다.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이다. 그가 분석하고 기록으로 남긴 곳은 명승지 인증서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기록을 '서하객유람기'로 묶었다. 지리학 문헌자료로, 문학작품으로 분류된다. 기록의 힘이다. 요즘으로 치면 '나선 김에 중국일주'라는 제목의 책이 될 법하다.

'납회(納灰)'는 포의족 말로 '행복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가까운 곳에 화력발전소가 느닷없이 나타나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잠시다. 이내 '내 호흡엔 지장이 없고,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게 하는 전경이 열린다.

봉우리 숲에 들어서자 산소에 취한다. 공기가 일품이다. 눈에 보이는 봉우리 숲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도 맑다. 이 동네 이비인후과 의원을 걱정할 만큼이다. 권력자들도 공기 하나는 엄지척이라 칭송했다 한다.

만봉림의 대표 관람 포인트로 꼽히는 팔괘전(八卦田) 전경. 이른 봄이면 유채꽃밭으로 변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만봉림의 대표 관람 포인트로 꼽히는 팔괘전(八卦田) 전경. 이른 봄이면 유채꽃밭으로 변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전동차로 이동한다. 명승 포인트마다 내려선다. 금수전원(錦繡田園), 팔괘전(八卦田), 육육대순봉(六六大順峰)이라는 이름이다. 숨은그림찾기가 시작된다. 관람객들은 반드시 깨야할 미션인 양 '잠자는 미인'을 찾는다. '장군봉'은 여기도 있다. 만물상의 중국 버전이다. 기암괴석의 팔자다. 보는 이마다 새로운 발견에 여념이 없다. 만봉림을 즐기는 법이다. 창작자에겐 스토리텔링의 시작이다.

깨놓고 말해 얼핏 보면 '문필봉(文筆峰)'이다. 인재가 많이 나는 명당 마을의 표시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문필봉 아래 포의족 주민들은 땅을 파먹고 산다. 전설과 현실의 괴리다.

인공호수인 만봉호에 유람선들이 다니고 있다. 물에 잠기지 않은 기암괴석과 만봉림이 조화를 이뤄 물 위의 명승이 된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인공호수인 만봉호에 유람선들이 다니고 있다. 물에 잠기지 않은 기암괴석과 만봉림이 조화를 이뤄 물 위의 명승이 된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만봉림에 둘러싸인 만봉호가 가깝다. 만봉호는 수력발전용 인공호수다.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이다. 길이는 120km다. 대구시청에서 영주시청까지 거리다. 운남성, 귀주성, 광서장족 자치구 경계가 연결돼 있다. 거대 규모에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헛웃음만 나온다.

◆우포로고진(雨布魯古鎭)

정가경 장군의 후손들이 600년간 모여 살았다는 우포로고진 마을. 돌집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보존마을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정가경 장군의 후손들이 600년간 모여 살았다는 우포로고진 마을. 돌집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보존마을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숨어살고자 한 이들도 정도껏 숨어 지낼 만한데 600년 동안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다. 현지어로 '어부로고진'이라 불리는 곳이다. 마을 전체가 돌집이다. 천적을 피해, 포식자를 피해 깊은 바다로 숨어든 심해어의 삶처럼 진귀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건곤일척 혈투를 벌인 진가경 장군의 후손들이 살던 곳이다. 숨어살던 곳으로 치면 송나라 명장 악비의 후손 마을에 못 미친다. 악비가 진회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한 뒤 후손들은 700년 가까이 태항산대협곡 악가채(岳家寨)에 숨어 지냈다.

일일이 걸어서 마을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이상 못 찾을 법하다. 평원이 없는 첩첩산중이다. 지대도 높아 숨쉬기도 어렵고 걸핏하면 비가 온다. 사람이 살든 말든 알 바 아니라 여기고 싶은 곳이다. 정말이지 은둔자를 위한 땅이다.

우포로고진 마을 중심에서 여유를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 오지라고 하지만 일부 주민은 스마트폰 검색에 한창이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우포로고진 마을 중심에서 여유를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 오지라고 하지만 일부 주민은 스마트폰 검색에 한창이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우포로고진 역시 보존마을이다. 우리로 치면 전통마을쯤 된다. 보존마을은 귀주성에만 40곳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에 소개돼 중국인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중이라고 한다. 오지 중의 오지인 셈인데 마을 어르신 일부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검색에 한창이다.

◆별미의 시간

포의족도 개고기를 식용으로 삼는다. 만봉림 인근 마을에 유독 큰 개가 많다. 경비견이겠거니 싶지만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많지 않은 논 한가운데 양어장도 만들었다. 단백질 섭취 방편이다.

우려와 달리 이곳에선 계란볶음밥이 유명하다. 원조 가게가 있겠으나 계란볶음밥 골목이라 불러도 될 만큼이다. 끼니 시간이 아님에도 야외 식탁에서 계란볶음밥을 먹는 이들이 제법 있다.

소수민족이 많은 귀주성에는 다민족 특유의 음식 문화가 공존한다. 묘족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서 전통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소수민족이 많은 귀주성에는 다민족 특유의 음식 문화가 공존한다. 묘족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서 전통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묘족의 먹거리 중에서는 수안탕이 별미다. 훠궈를 먹듯이 샤브샤브용 고기를 담갔다 먹는다. 국물은 해장용으로 애용된다고 한다.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난다. 묘족에겐 소금이 귀했는데 대체재로 만들어낸 게 수안탕의 주재료가 되는 장이다. 토마토를 쌀뜨물에 삶아 40일간 발효해 보관한다고 한다.

황과수 주변에선 몽키바나나라고 부르는 바나나가 특이하다. 몽키바나나라고 해서 작은 걸로만 여겼더니 굵기가 성인 여성 손바닥 정도다. 하나를 다 먹으면 든든할 만큼이다.

※취재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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