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누진제 소비 상한 확대 정책
한전 약 2천800억원 손실 부담 예상
전기 적게 쓰는 소비자 할인 줄이면
결과적으로 이들 요금이 오르는 셈
실내에서 여름에 긴소매 옷을, 겨울에 반소매 옷을 입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를 견디는 데 전기는 필수적이다. 적절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기는 복지의 문제이다.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기업이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 경우 가난한 사람이 전기를 충분히 소비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요금을 지불하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지켜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저렴한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적자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택하면 많은 사람이 원하는 만큼 전기를 소비한다. 다만, 전기가 과도하게 소비되고, 전기를 소비하는 사람과 세금을 내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수익자 부담 원칙이 깨진다.
우리나라는 한국전력공사라는 공기업이 전기를 공급한다. 전기요금은 생산비에 적절한 이윤을 더해서 결정되므로 비교적 저렴하다. 우리나라의 전기 공급은 앞의 두 방식의 절충이다. 모든 절충이 그렇듯이, A와 B를 섞으면 A와 B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나타난다. 전기요금이 저렴하므로 적자가 발생하고 여름과 겨울에 초과 수요가 나타난다. 사기업이 전기를 공급하면 이러한 문제가 없다. 여름과 겨울에는 전기요금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전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름과 겨울의 전기 소비를 억제하였다. 소비량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높은 요금이 부과되므로 전기 소비가 억제된다. 200㎾h 이하를 사용하면 ㎾h당 93원, 201~400㎾h를 사용하면 188원, 400㎾h를 초과해서 사용하면 281원의 요금이 부과되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누진제를 수정하였다. 7, 8월에 한하여 ㎾h당 93원이 적용되는 소비 상한이 300㎾h로, 188원이 적용되는 소비 상한은 450㎾h로 확대되었다. 올해부터는 7, 8월에 전기를 많이 쓰더라도 높은 요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누진제 완화로 7, 8월의 전기 소비가 증가하고 한전은 약 2천800억원의 손실을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7, 8월에 누진제를 완화해서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좋은 정책을 시행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2천800억원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한전은 필수공제를 폐지 또는 완화한다고 한다. 필수공제는 전기를 적게 쓰는 소비자의 요금을 할인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국민의 요금은 인하되고, 적게 소비하는 국민의 요금은 인상된다. 이는 인센티브(incentive)의 측면에서 개악이고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전기요금 체계를 만드는 것은 전기 생산비를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적은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문제와는 무관하다. 전기요금 체계를 잘 만들어도 모든 국민이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전기요금을 가정용과 산업용으로, 주간과 야간으로 구분하고, 누진제를 완화하고, 필수공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얻지만 누군가가 손실을 입는다. 전기요금 체계의 개편은 돈을 오른쪽 주머니에서 왼쪽 주머니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국민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하려면 생산비를 낮추어야 한다.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전기를 생산하면 생산비가 상승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공기업이 전기를 공급하면 소비자와 납세자가 증가한 생산비를 부담한다.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국민이라면 효율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근시안이다. 내가 적게 부담하면 누군가가 많이 부담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많이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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