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사랑받은 경험이 필요하다.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우주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받아야 한다. 신과 천사와 온 우주가 '나'를 둘러싸고 주목하고 환호하던 때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환영받아야 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아야 한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아이의 필요는 무조건 채워져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주변의 사람들이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엄마 배 속에서의 기간과 태어나서 1년 동안의 기간이 이 기간에 해당한다. 우리가 스스로 가장 무능함을 경험할 때 가장 존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렇게 사람은 한 번은 우주의 주인공이 되어 존재의 만족을 얻어야 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다. 인간은 종의 연약함을 사랑과 희생으로 보상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생존에 필수적인 사랑이 메말라서 신음하고 있다. 인류는 다른 방향으로 약함을 보상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유태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약 10만 년 전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사람 종이 살았다고 한다. 그중 오늘날의 인종 사피엔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종이다.
사피엔스가 상대적으로 약한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집단을 이루어 협동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대규모 집단적 협력을 통해서 더 강한 종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하라리는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 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화, 이데올로기, 허구가 인류를 뭉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규모 협동 체제인 국가, 종교, 교역망, 갖가지 사회정치적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제국주의, 금융 시스템, 고등종교다. 이 또한 종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함이다. 인류는 '약함'의 과잉 보상으로 '악함'까지도 선택했다.
상상 또는 허구를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가상 세계'이다. 가상 세계가 인류의 협동을 이끌어냈다. 가상 세계가 역사를 이끌어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이끌어갈 가상 세계는 무엇인가? 현실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제국과 돈과 종교의 환상인가? 우리는 여전히 정복과 착취와 억압의 악순환을 반복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현재 일본에서 꿈틀거리는 제국주의의 망령을 본다. 그 결과는 투쟁과 전쟁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사에서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가치혁명'을 준비하면 어떨까? 인류의 생존이 상상의 결과라면 인류의 갈등기에 인류를 살리는 상상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평화와 공감과 배려로 인류를 이끌어 간다면 어떤 미래가 될까? 온 인류가 사랑의 환상에 빠지는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이고, 원하는 것이 사랑인데, 사랑이야말로 인류의 분열과 멸망을 막는 방법이 아닐까? 새로운 가상 세계로 무장한 신인류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페루 출신의 철학자이며 도미니칸 수도회의 사제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는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 그대로이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호모사피엔스를 생존하게 한 상상력을 미래의 생존을 위해 새롭게 사용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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