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타임캡슐]방학, 성적표 받는 날

방학의 시작, 성적표 받는 날... 판결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
방학의 설렘과 비례하는 성적이길 바라던 마음 새록새록

'생활통지표'를 받아든 여중생들의 얼굴에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방학이 늘 설렐 수만은 없었던 이유다. 매일신문 DB.

여름방학이 코앞이다. '방학'은 설레는 단어다. '학업을 풀어둔다'는 풀이보다 쉰다는 의미의 '휴가'가 어울린다. 직장인들이 휴가 계획을 짜듯 학생들도 방학 준비를 했다.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 지키려 노력했다는 타협으로 끝나던 '생활계획표'였다. 방학숙제 벼락치기, 일기 한 달치 이틀 만에 몰아쓰기로 마무리하는 개학 즈음에는 '무계획도 계획일 수 있다'는 비교과서적 삶의 방식도 깨치곤 했지만.

방학이 꼭 설렐 수만 없었던 데는 성적표의 역할이 컸다. 지금 초등학교에선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지만 흑백사진 주인공들의 교육은 시작부터 끝까지 평가와 순위로 귀결됐다. 대개는 부모님 확인 도장을 받아 오라는 엄명이 떨어졌기에 성적표를 받는 순간은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과 비슷했다. 수우무죄(秀優無罪), 양가유죄(良可有罪).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로 평가되던 학업성취도는 내신 성적이었다. 노름판에서 자기 패를 보듯 쪼아보던 성적표였다. 타짜처럼 '아수라발발타'를 외치는 순간 '수수수수'가 터져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방학과 성적의 기쁨이 비례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런 꿈같은 비례식은 좀체 현실에 적용되지 않던 공식이었다.

내 성적의 첫 목격자는 옆자리의 짝이었다. 평소 긴장 관계가 아니라도 서로를 배척하던 순간이었다. 고개를 자동으로 돌려 내리까는 눈길은 적진의 척후병처럼 예리했다. 서로의 성적을 참고하거나 경계할 리 없던 세상 모든 짝들의 심리는 초능력으로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상대의 성적을 암송할 만큼 비상한 실력을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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