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망망대해를 자랑하는 태평양. 그러나 그 가운데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끔찍한 지대가 있다. 1997년 미국의 환경운동가 '찰스 무어'가 이 지대를 발견하자, 세계는 경악했다. 이곳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더미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곳이 약 1조8천억 개의 크고 작은 플라스틱 조각으로 이뤄졌고 면적 또한 캘리포니아주의 4배인 160만㎢에 달한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이 지대를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 부른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의료폐기물 사태'는 GPGP의 축소판이다. 폐기물 처리 업체의 무단 투기가 뒤늦게 알려진 점이나 폐기물 처리가 난제라는 점 등이 사뭇 GPGP를 닮았다.
특히 경북 지역은 의료폐기물 유입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 의료폐기물의 최대 피해지로 밝혀졌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모두 21만9천t으로 이 중 대구경북에서는 1만9천547t이 발생, 불과 9%에 그쳤다. 반면 전체의 30%쯤이 경북으로 몰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 말 고령군 다산면에서 불법으로 보관된 의료폐기물 80t이 주민들에 의해 적발된 이후 대구 달성군과 문경시, 김천시 등 주로 경북 지역에서 잇따라 무단 의료폐기물이 발견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같은 달 3일에는 의성군에 방치된 거대한 '쓰레기 산' 문제가 미국 CNN 방송에 집중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경북 곳곳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불을 지핀 고령에서는 100여 일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무더위와 장마 등으로 2차 감염 피해를 우려하는 등 속을 태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폐기물 처리업체의 불법 행태가 1차적 원인이지만 정부의 느슨한 관리 또한 사태를 키운 주범이다. 폐기물 처리에 있어 환경부의 안일한 접근법도 문제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도 원치 않는 '소각장 건설'에만 목을 매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경 문제를 접근할 때 이제 유연성과 과감성이 필요한 때다.
먼저 대형 의료기관 내에 자가멸균시설을 설치해 의료폐기물을 멸균 분쇄하도록 하고 감염성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일반 소각장에 태우는 방안이 있다. 이는 법적 제한에 걸려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힘을 보태야 한다.
또 다른 방안은 정부가 직접 나서 의료폐기물 처리를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소각장이 혐오시설로 인식돼 유치를 꺼리지만, 과거 경주 방폐장 건설을 참고할 만하다. 방폐장도 대표적인 혐오시설이었지만, 공론화와 다양한 경제적 지원, 고용 창출 등이 뒷받침되면서 당시 지자체 간 유치 경쟁까지 벌어졌다.
78,000. 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지대인 GPGP를 모두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는 햇수다. 사실상 '처리 불가'다. 이곳의 수많은 플라스틱 조각은 얼마나 오랫동안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이 숫자는 어찌보면 인간의 탐욕과 외면이 켜켜이 쌓여 재앙이 수치화된 것일 수도 있다.
의료폐기물 사태는 우리 곁에도 언제든 GPGP가 자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흐지부지 넘겨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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