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요리산책] 상추 쌈

상추쌈
상추쌈

여름철 반찬으로 쌈이 으뜸이다. 아침 밥상에 쌈이 올랐다. 어머니는 담장을 타고 오르는 호박잎, 텃밭에서 따온 우엉잎과 깻잎을 가마솥 밥물이 자작자작 잦아들 때 쪄냈다. 밥에 푸르뎅뎅한 푸성귀 물이 배었다. 빡빡하게 끓인 된장과 간장양념장이 상에 올랐다. 부드러운 쌈밥이었다.

상추는 이른 봄부터 밥상에 올라 입맛을 돋우었다. 아버지는 담배 모종 기르는 비닐하우스 한편에 상추씨를 뿌렸다. 들판에는 싹이 자라지 않았으나 비닐하우스 속에는 상추, 아욱 등 몇 가지 채소가 파릇파릇 자랐다. 어린싹일 때는 솎아서 고추장, 들기름을 넣고 비볐다. 손바닥만큼 자라면 쌈으로 먹고, 양념장을 끼얹어 무침으로도 먹었다.

점심에는 주로 상추쌈을 즐겼다. 식은 밥과 상추 한 소쿠리만 있으면 한 끼 반찬으로 거뜬했다. 양념을 넣은 쌈장도 좋으나 된장독에서 막 퍼온 된장을 곁들여도 짭짤한 맛이 일품이다. 간혹 돼지고기가 상에 오르면 상추쌈은 주가가 오른다. 상추에 깻잎 곁들이고, 실파 한 줄기 얹은 후 돼지고기 한 점 올린 후 양념장과 마늘・고추 한 조각씩 올린다. 아앙,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다. 눈까지 커진다. 볼이 불룩거린다.

쌈이 입안에 꽉 차면 제대로 씹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쌈을 조그맣게 쌀 수는 없다. 구색은 갖춰야 할 게 아닌가. 어른들은 상추쌈이 크면 먹을 때 볼썽사나우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먹는 모습은 흉하지만 물리치지 못하는 쌈밥이다. 그만큼 쌈은 우리 밥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상추 쌈
상추 쌈

상추에 대한 기록은 무수하다. 이집트벽화에 상추가 그려져 있고, 중국의 고서(古書)에도 고려에서 가져온 상추 씨앗은 천금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천금채'라 불렀다.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상추가 역수출되었던 것이다. 당나라 때의 "천금식치"에는 '상추가 정력을 더해준다(益精力)',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에도 상추는 생식능력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집트 신화에도 생식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상추였다. 우리나라 민간에서도 상추 줄기에서 나오는 우윳빛 진액을 생식능력에 결부시켰다. 고추밭 이랑사이에 심은 상추는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것은 쌈을 먹기 위한 것'이라는 기록을 보며 상추쌈을 마련한다. 풋고추 다지고 멸치 손질하여 고추다대기를 만들었다. 쌈장도 준비했다. 양배추와 케일도 쪘다.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라는 속담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난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노정희 요리연구가

Tip: 상추 줄기에서 나오는 액체에는 락투세린·락투신 등이 들어 있어 진통 또는 최면 효과가 있다. 상추 먹고 졸음이 쏟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추는 찬 성질을 가진 식품이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몸에 냉해질 수 있다. 수유하는 산모가 상추를 먹으면 아기가 푸른 변을 볼 수 있으니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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