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우와 유방은 진(秦)왕조를 멸망시킨 영웅들이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두 사람은 처절한 패권 다툼을 벌였다. 초기에는 초나라의 항우가 우세했으나, 나중에는 한나라의 유방이 유리하게 되었다. 기원전 202년 유방은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포위했다. 어느 날 한밤중 유방은 병사들에게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초나라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기 위해서였다. 사방에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 소리를 들은 항우는 "(한나라 병영에) 초나라 사람들이 어찌 저렇게도 많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낙담하여 술을 마시고, 그날 밤 800명의 기병만 거느리고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다가 오강(烏江)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사방(四面)에 초나라 노래(楚歌)라는 사면초가의 유래다. 주위가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진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항우는 형세를 오판한 것이다. 사면초가를 듣고 유방의 계략에 빠졌을 뿐이다. 초나라의 노래가 들린다고 초나라 병사들이 모두 포로가 된 것으로 여겼으나, 그 노래는 초나라 병사들이 부른 것이 아니었다. 항우가 좀 더 냉철히 살피고 판단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일본에 있다. 열흘 정도 되었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에 대해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일본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반대로 한국의 여론은 들끓고 있다.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의 실책으로 한국이 사면초가에 몰렸다고 연일 비난한다. 청와대와 여당 측은 결사항전의 투지로 일본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사방에서 반일, 극일의 외침이 들린다. 사면일가(四面日歌)라 할 만하다. 초나라의 노래가 사실이 아니었듯, 반일의 노래만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냉철한 판단력으로 이번 사태를 극복해야 하겠다.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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