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노인(老人)은 그 자체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평균 수명이 그리 길지 않던 시절, 노인은 풍부한 경륜과 지혜를 갖춘 지역사회의 많지 않은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르신'이란 말도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웬지 권위적인 느낌이다. 100세 시대, 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80 청춘'을 이야기하면서 어르신의 권위를 고집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든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은퇴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지식을 갖춘 고학력 시니어들이 새로운 제 2의 인생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40~50대 보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시대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 받는 시니어가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고 동료 시니어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신세대 시니어'가 등장한 셈이다. 신세대 시니어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내가 바로 봉사의 주체"= 대구중구노인복지관은 경로식당의 자원봉사단이 바로 이 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 스스로 우리가 우리를 돕는 시스템이다. 특히 49종류의 문화교육 프로그램 강사 중에서 시니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32%에 달한다. 주강사와 보조강사 2~5명이 시니어강사팀을 이루어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공급자와 수혜자,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우리'가 있다.
시니어 강사들의 소감도 남다르다. 김지백(67·필라테스) 씨는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7년 간의 교직생활에서 아쉬웠던 점을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배려와 신뢰가 바탕이 된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희(70·발건강웃음건강) 씨는 "우울감과 무기력한 느낌이 강의를 시작하고 부터 다 사라졌다"고 했고, 장지열(69·당구) 씨는 "처음 강의 나와 당구를 배우려는 어르신들의 열정에 놀랐다"고 말했다. 박경애(60·한글서예) 김상만(71·한자교실) 씨는 "어르신들의 학습 집중력에 놀랐다.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강의를 진행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마트폰 동호회 활동을 하다 강사가 된 정휘수(73) 황재욱(74) 씨는 "천천히, 쉽게, 그리고 아낌 없는 격려가 성공적인 시니어 강의의 핵심"이라고 했고, 안용화(67) 기초사교댄스 강사는 "30~40대는 재미를 위해 댄스를 배운다면, 시니어들은 건강을 위한 운동 목적으로 댄스를 배운다"고 설명했다.
▶ "우리와 눈높이 마음이 맞아요"= 시니어 강사들에 대한 어르신들의 반응도 뜨겁다. 김무목(82·필레테스 수강생) 씨는 "항상 배려해 주는 모습과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건강관리법이 너무 고맙다. 주 3일 강의를 하는데 강의가 없는 이틀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김도양(72) 씨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음과 강사님 만의 독특한 리듬감 있는 수업이 재미 있고 기억에 오래 남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복습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김도양 씨가 수강하는 발건강웃음건강 강좌는 시니어들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는 점을 감안, 리듬감 있는 독특한 수업방식을 개발했다.)
시니어 강사들의 가장 큰 장점은 동년배·어르신들의 상황과 마음을 너무 잘 알아 주며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천계희(71) 모용희(77) 씨는 "차근차근 눈높이 수업을 해주는 친철한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했고, 스마트폰 초급반 최준영(66) 씨는 "배운 걸 매번 잊어버려 늘 다시 물어보지만, 까먹는 건 당연하다면서 얼굴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는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창규(59) 대구중구노인복지관장은 "노인정보화교육과 관련해 대구지역 노인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65.4%가 '노인을 이해하는 동년배가 가르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노인학습자들은 기억력 쇠퇴, 감각·지각능력 퇴화로 인해 일반적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동년배교수법(동료교수법)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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