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제화를 신는다는 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신발을 갖는 것이다. 장인이 직접 발 치수를 재고, 가죽을 자르며,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가며 만든다. 그만큼 편하고, 신는 사람의 품격이 살아나는 신발이다. 하지만, 이제 수제화는 기성화의 대량 생산으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종로제화 백수룡(64) 대표는 대구 중구 북성로 수제화골목에서 50여 년을 한결같이 손님에게 꼭 맞는 신발을 만들어오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맞춤 구두
"발의 모양과 크기는 지문과도 같아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성품으로는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볼의 넓이와 발등의 높이를 맞춰서 신으면 정말 편하다는 걸 알게 된다. 맞춤 수제화 한번 신어본 분들은 웬만해서 다른 신발을 신기 힘들어해요."
대구시 중구 북성로 수제화 골목에서 맞춤 수제화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 종로제화 백수룡 대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평생을 수제화 장인으로 살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백화점에서도 간혹 주문제작을 하지만 저같은 디자이너가 직접 치수를 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맞춤 수제화는 전문가가 진단을 하고 처방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고객과의 상담은 모두 직접 제가 하고 있습니다."
구두 장인인 백 대표가 직접 발모양을 확인하고 치수를 재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걸음걸이 특징, 생활패턴 등이 디자인의 고려대상이다. 또한 고객에 따라 가죽의 종류와 등급도 차별화한다. 가죽마다 인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굽의 모양과 높이, 장식품도 상담을 통해 결정된다. 단순히 발의 치수를 재는 것이 아닌, 신발을 만들기 위한 종합검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다양하다. 발의 크기와 모양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도 있고 단순히 편한 신발을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은 기존 고객들의 소개, 또는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오는 사람들이다. 요즘엔 기념일의 선물용으로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백 대표는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크기와 모양별로 수백 개의 틀(목형)이 필요한데 특별한 경우에는 그 틀을 다음 번엔 못쓸지언정 고객의 발에 맞추기 위해 틀을 칼로 깎아 내가며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백 대표는 수제화에 대해 설명했다. "기계화는 기계화, 수제화는 수제화예요. 내 발에 맞는 신발이냐가 중요하다. 다만 기계화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뿐입니다. 사람 손으로 만든다고 다 수제화가 아니다. 신는 사람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이를 돕는 것이 수제화다. 그런 과정에서 디자인이 조금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수제화 장인들이 하는 일이 그거죠. '나만의 신발'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50년 수제화 외길 인생
백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1968년 13세의 나이에 구둣방에 들어갔다.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먹고 살기 위해 기술을 배워야 했습니다."
처음엔 잔심부름을 하며 기술을 배웠다. 기술 분야가 대개 그렇듯 선배들이 선뜻 기술을 자세하게 전수하기를 꺼리는 풍토에서 어깨너머로 구두제작을 배웠다. "처음 구둣방에 들어가 배울 땐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칼에 손과 무릎 등을 베이기 일쑤였다. 칼에 베이면 병원은 커녕 본드로 감아 그냥 버티며 일했다"며 당시 고생담을 털어놨다.
구두제작 공정은 크게 도안, 재단, 제본, 접우(바닥마감)의 과정을 거치는데, 평소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가 남달랐던 백 대표는 3년 만에 기술을 배운 뒤 공장(대량으로 구두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수입도 좋았다. "보름 정도 일하면 대구 변두리 전셋방을 얻을 정도로 대우가 좋았다. 하지만 젊어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고 했다.
백 대표는 더 나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규모가 큰 공장서 구두제작 기술을 익힌 후 30세 때 공장을 차려 운영했다. 10년 뒤 40세에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호황과 불황이 있었지만 잘 나갈 때는 10명의 직원을 둔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천연가죽만 사용한다. 주로 쇠가죽이 대부분이며 주문에 따라 양가죽, 뱀가죽, 타조, 악어 가죽을 사용하기도 한다. "고급가죽으로 만든 수제화는 수작업이라 가죽이나 굽 변경이 가능하고 합성피혁 기계화(기계로 만든 신발)에 비해 땀 흡수가 잘돼 발 냄새 제거에 뛰어난 장점이 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마트가 활성화하면서 많은 수제화 공장이 하청업체가 됐다. 값싼 중국산의 공략에 불황까지 겹쳤는데 재료비가 급등하면서 그늘은 더 짙어졌다. "시간은 들고 돈은 되지 않는 사업이다 보니 수제화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계승
백 대표는 요즘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한다. 백 대표는 "갈수록 희소성은 있는데 배우려는 사람은 없다. 몸으로 작업하는 직업이다 보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하루 15시간 본드 냄새를 마시며 커피전문점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견디겠다는 청년이 있을 리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요즘 백 대표 옆에는 아들 슬기(37) 씨가 거들고 있다. "아버지 기술이 하루 아침에 얻은 것이 아니잖아요. 아버지 기술을 이어 받으려고 5년 전부터 배우고 있는데 아직은 부족한 게 많습니다. 아버지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처럼 손님들이 편하게 구두를 신을 수 있도록 열정을 다해 신발을 만들겠습니다." 옆에 있던 백 대표는 그냥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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