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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부키 펴냄

'건강의 배신'은 자기절제와 생활방식 관리를 통해 더 건강하고, 더 오래살 수 있다고 말하는 헬스케어 산업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진은 건강진단 모습. 매일신문 DB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퇴행성 질환과 노화를 막기 위해 컴퓨터 리프로그램하듯 몸을 업그레이드 하려 한다. 그는 매일 250개의 알약을 먹고 몇 개월마다 수십 가지 검사를 받는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120세까지 살 계획이며, 러시아의 인터넷 대부 드미트리 이츠코프는 1만 살까지 사는 것이 목표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잘 절제하고 생활방식만 잘 관리하면 더 젊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약속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자칭 '운동광'이었던 루실 로버츠는 59세에 폐암으로 사망했고, 피트니스 산업의 개척자인 짐 픽스는 매일 16㎞를 달리고 식단 제한을 했지만 52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긍정 이데올로기, 저임 노동, 화이트칼라 몰락 등 현대 사회의 병폐를 고발해 주목받았던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현대인의 새로운 풍속이 된 '건강 열풍'의 숨은 진실을 폭로하는 '건강의 배신'을 펴냈다.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다는 '꿈'

영생(永生)과 건강한 삶에 대한 염원은 늘 존재해왔다. 현대사회에는 인간의 이런 염원을 자기절제와 생활 방식 관리로 약속하는 시대다. 하지만 에런라이크는 현대 의학의 장밋빛 약속과 건강 열풍의 민낯을 드러내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지은이는 병원과 의료계 현장으로 뛰어들어 '현대 의학이 과학적'이라는 주장, '예방 의학이 무병장수를 보장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파헤친다. 또 피트니스센터와 웰니스 업계를 찾아 안티에이징의 비법을 제공한다는 그들의 프로그램과 제품이 실제로 효력이 있는지 살피고, 실리콘밸리에서 영생을 이루겠다는 사람들의 꿈이 실현 가능한지를 따진다.

병을 조기에 발견해 쉽게 치료한다는 '건강검진'은 현대의학이 약속하는 무병장수의 핵심이다. 지은이는 이런 예방조치가 수명을 몇 년 더 늘려줄지도 모르지만 연장된 삶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다. 예방 의학은 대개 생명을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진다. 당사자가 비의료적으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요구해도 결국은 중환자실 병상에서 케이블과 튜브에 속박된 채 삶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죽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검사와 검진은 과잉 진단이라는 유행병을 만들어냈다. 지난 20여 년간 우후죽순 생겨난 환자 권익 보호단체들은 수십 가지 질병을 '브랜드화'하고 검진 필요성을 홍보했다. 하지만 골다공증은 병이 아니라 35세 이상 여성은 거의 겪는 일반적인 노화 현상이며, 유방 조영 검사는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일한 환경 요인인 전리방사선을 쏘아대고, 치과에 가면 엑스레이로 다량의 방사선을 입에 쏟아붓는다. 갑상선암은 과잉 진단이 특히 심한데 21세기 초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여성들이 받은 갑상선암 수술 중 70~80%는 불필요했으며, 한국의 경우는 90%까지 올라간다.

◆자연스러운 노화와 죽음

그럼에도 우리는 현대 의학이 외치는 건강 열풍에 휩쓸리게 된다. 현대 의학이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의료계가 자신들이 과학에 근거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의료 사업의 독점권을 획득했고, 오랫동안 '사이비 과학'이라고 알려진 대안의학이 자신들의 경계를 침범하는지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독점권을 계속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모든 것이 통계적 증거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증거기반 의학'이 대두했는데, 사실상 오늘날의 검사 대부분이 이 '증거기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 예로 유방 조영 검사 덕분에 유방암 발병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전립선암 검진에서도 사망률 감소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은이는 의료업계를 포함한 거대한 헬스케어 산업이 말하는 '몸과 마음을 통제해 무병장수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노화를 생명 주기의 자연스러운 단계가 아닌 질병의 일종으로 여기지만, 노화의 치료법은 없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비극적 중단이라 여기며 이를 늦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아니면 삶은 영원한 비존재 상태의 일시적 중단이며 우리를 둘러싼 경이롭고 살아 있는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짧은 기회라고 여길 수도 있다. 지은이는 후자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 안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조화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까지 모두 포괄하는 패러다임이다"고 말한다. 이같은 관점을 받아들일 때 건강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지은이가 전하는 메시지다. 29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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