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세희가 1970년대 후반에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열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며 첫 번째가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것은 첫 단편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나타내며 세상사 많은 시시비비가 이 띠의 성격을 닮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종이를 잘라 띠를 만든 후 띠의 양 끝을 한 번 꼬아 붙이면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뫼비우스의 띠에선 어느 지점에서나 띠의 중심을 따라 한 바퀴 이동하면 출발한 곳에서 정반대 지점에 도달할 수 있고, 계속 나아가 두 바퀴를 돌면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우선 뫼비우스의 띠 각 지점에서는 안팎이 구분된다. 안이 없이 밖이 있을 수 없고 밖이 없이 안이 있을 수 없듯이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한다. 이처럼 선과 악, 긍정과 부정, 옳고 그름처럼 가치가 대립되는 것들도 야누스의 두 얼굴같이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함을 시사하고 있다.
연작 중 두 번째 단편 '칼날'의 주인공인 주부 신애는 난장이를 불러 수도꼭지를 교체시킨다. 이때 펌프가게를 운영하는 사나이가 나타나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난장이에게 심한 폭력을 가한다. 이를 제지시키기 위해 신애가 식칼을 휘둘러 사나이의 팔에 상처를 입힌다. 여기서 난장이가 수도꼭지를 교체해 주는 행위는 신애 입장에선 선이고 사나이 입장에선 악이다. 그리고 신애가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난장이에겐 선이지만 사나이에겐 악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에선 특정한 지점에서 이동함에 따라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이동, 즉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 강자와 약자의 역할이 뒤바뀔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연작 중 네 번째 단편은 연작소설과 이름이 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 지역에서 집을 팔아도 아파트 입주권을 살 형편이 안 되는 난장이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결국 난장이가 집을 판 날 막내 영희가 가출을 한다. 영희는 자기 집을 산 사나이를 따라 가서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때때로 성적 유린까지 당한다. 남자로부터 신임을 얻은 영희는 잠든 남자를 마취시키고 자기 집 관련 서류와 아파트 입주에 필요한 돈을 챙겨 달아난다. 지금까지 영희는 약자이며 피해자인 선을 나타냈고 사나이는 강자이자 가해자인 악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었다. 영원히 약자나 강자로 살 수 없고 영원히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때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시시비비가 넘치고 있고,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관조차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립은 발전을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다. 몸부림이 긍정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인정하고, 소통하고, 곡진하게 설득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자기와 자기 집단만이 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자신이 바라보는 동굴 밖 세계만 인정하는 사람들, 권력에 취해 '완장'(윤흥길 작)의 주인공 종술처럼 공격적이지만 없는 것은 대책이고 있는 것은 무능인 사람들도 있다. 오늘 하는 행위가 선하게 보일지라도 절대선(絶對善)은 아니며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음을 통감(痛感)해주길 바란다. 오늘 선을 행하여도 내일은 어쩌다 악을, 그리고 훗날엔 다시 선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그래서 동과 서,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며 보듬어주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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