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한 천주교 신자의 독백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지만 나오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볍지는 않은' 곳이 있다. 조선조 죄수를 처형했던, 도심 반월당에 있는 관덕당(관덕정)이란 바로 그 역사 현장에 1991년 천주교대구대교구가 개관한 관덕정순교기념관이 그렇다.
1860년 나라의 첫 토종 종교로 평가받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1864년 죽음으로 순도(殉道)했고, 천주교 신자 24명이 을해(1815)·정해(1827)·기해(1839년) 박해로 순교(殉敎)한 곳이니 피의 성지(聖地)와 같다. 일본에 맞선 의병들도 순국(殉國)한 곳이니 기릴 만하다.
동학 창시자와 서학(西學)의 천주교 신자, 맨손의 의병까지 목숨을 잃은 슬픈 사연의 관덕정이 순교기념관이 된 까닭을 알 수 있다. 종교인이 사형된 프랑스 파리 시내 몽마르트르(Montmartre·프랑스 말로 '순교자의 언덕'이란 의미)가 사람들 발길을 끄는 것처럼 말이다.
기념관 안에는 또 다른 아픈 역사가 있다. 대원군이 1871년 전국에 세운 척화비(斥和碑)이다. 겉에는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의 주장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 새겼다. 다시 옆에 '우리 만대 자손에 경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대원군 뜻과 달리 조선은 외세를 막지 못했다. 되레 나라와 백성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신음만 했다. 이후 척화비는 없어지거나 땅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척화비가 다시 기념관 한쪽을 지키며 악몽의 옛일을 되새겨주니 발걸음이 어찌 가볍겠는가.
7월, 일본의 경제 보복 도발로 나라 안팎이 심상찮다. 안에서는 대통령을 에워싼 진영 세력의 말잔치가 그렇다. 갈수록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각료, 여당 인사가 대열을 갖춰 일본 공격의 강도를 높인다. 이런 흐름에 맞서거나 토를 달면 '친일'로 몰거나 마치 적처럼 본다.
나라 밖에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뭉쳐 한국을 괴롭히고 있다. 우리 하늘을 제 나라 공간처럼 멋대로 휘젓고 다닌다. 미국은 일본과 싸우는 한국이 마뜩잖은 모양이다. 이런 즈음, 국민을 '친일'과 '애국'의 잣대로 편을 가르는 모양새가 마땅할까. '마음의 척화비'를 세우면 될 일을 '말의 척화비'를 세우려다 되레 역풍을 맞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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