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고공농성 한 달 째…그들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노조파괴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복직하지 못하고 물러날 순 없었다"

26일 오후 대구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 천막을 치고 고공농성 중인 병원 해고 노동자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6일 오후 대구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 천막을 치고 고공농성 중인 병원 해고 노동자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두 명이 응급의료센터 옥상에 오른 지 30일로 한 달을 맞는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밤새 텐트를 붙잡고 밤을 새는 날도 있었고, 찌는 듯한 폭염 속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날도 있었다.

2006년 이후 13년 째 싸우고 있는 박문진(58) 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송영숙(43) 전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이번 고공농성은 복직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라며 "결코 물러날 수 없다"고 했다.

◆길어지는 고공농성, 불가피한 적응

지난 26일 영남대의료원에서 70m의 높이를 두고 기자와 전화로 만난 두 해고자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옥상에서의 긴 생활로 몸도 마음도 탈진할 법도 하지만 출·퇴근 선전전과 각종 인터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여성 둘이 한달째 살고있는 옥상은 난간이 겨우 종아리 높이인 40㎝에 불과해 위험천만하다. 박 전 지도위원은 "농성 초기에는 추락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도 했지만 이젠 적응됐다"고 했다.

세안과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나름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빗물을 받아 머리를 감고 대소변 패드를 이용하는 등 임기응변하고 있는 것. 박 위원은 "다만 온갖 소음 때문에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건 여전하다"고 웃었다.

13년 전인 2006년 10월, 당시 주5일제 시행에 따라 합의한 인력 충원을 요구하던 영남대의료원 노조는 사측이 교섭에 임하지 않자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천막 설치를 두고 노사가 몸싸움을 벌였다. 이에 대해 박 위원은 "사측의 노조 와해 계획에 완전히 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2007년 2월 노조원 10명 해고였다. 이후 소송을 통해 2010년 7명은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복직했지만, 박 전 지도위원과 송 전 부지부장 등 3명은 해고가 확정됐다.

이후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영남대의료원 등 전국 168개 기업에 대한 노조파괴 컨설팅을 벌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실체가 뒤늦게 드러났다. 이를 주도한 노무사는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영남대의료원 측은 노조파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2010년 판결을 내세워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지 의료봉사, 가족과의 평범한 행복 꿈꾸던 둘

두 사람은 간호사로서 꿈이 있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싸워야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송 전 부지부장은 "당당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다보니 13년이 흘렀다"고 했다.

원래 박 전 지도위원은 오지 의료봉사가 꿈이었다. 대학 졸업 후 경험을 쌓으려 영남대의료원에 입사했고, '노조 활동도 오지 봉사활동 못잖게 뜻 깊은 일'이라는 한 목사의 설득에 노조 간부를 맡은 게 이렇게 힘든 삶의 길로 접어들게 할 지 몰랐다.

박 위원은 "나라고 평범한 삶, 못다 이룬 꿈을 찾고픈 마음이 왜 없었겠냐"며 "하지만 무참한 노조파괴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복직하지 못한 채 물러나는 것은 내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복직을 해도 정년까지 고작 1년 남짓 남았을 뿐이다.

환자를 돌보며 가정에서, 직장에서 소소한 삶을 누리고 싶은 게 전부였던 송 전 부지부장은 "부모님도 가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가족에게 내가 잘못해서 해고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한편 영남대의료원 노사는 대구고용노동청의 사적조정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 25일까지 3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합의를 보지 못했다. 양측 모두 좀처럼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아 아직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